묵상자료 9062(2026. 3. 9. 월요일).

시편 31:1-3.

찬송 44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을이 쓸쓸하게 느껴질 때의 처방전으로 <숙명/宿命>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던 시인 케스트너는 요람과 무덤 사이에는 고통이 있었다.”는 시를 남겼습니다. 에릭 케스트너, 김은주 역, 마주보기, p.67.

 

2. “유다가 대신 종이 되겠다고 나서다(18-34)”을 읽었습니다. 인생살이를 어려운 스무고개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의 어머님이 늘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머니 나이가 되고 보니 새록새록 그 말씀이 진리처럼 다가옵니다. 그 이유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때문입니다. 환경이 비슷하거나 말이 통하는 자리라면 조금은 나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엊그제 한 크리스천 방송국에서 <사주팔자>라는 코너에 우연히 접속이 되었습니다. 강사가 MC에게 물었습니다. 남편이 의사이니까 잘 이해하여 주고 죽이 잘 맞느냐고 묻자, 아니라고. 1-100까지가 하나도 맞는 게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도 소리는 높이지 않을 것 아니냐고 하자, 육박전만 아니지 매일 전쟁터라고 대답했습니다. 연애시절과는 너무 딴 판이어서 경악을 하는 중이라 했습니다. 본색/本色이 드러난 것 같다면서 말입니다. 많이 웃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강사는 말했습니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조정과 타협을 하면서 살아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앞 단락에는 요셉이 초청한 만찬에서 후하게 대접을 받는 열한명의 형제들은 각기 곡식을 구해서 집으로 귀환하는 중에 이집트의 헌병들이 뒤쫓아 왔습니다. 총리대신이 아끼는 은잔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다시 혐의를 뒤집어쓰게 된 것입니다. 이미 기획된 것이었으니 베냐민의 자루에서 그 귀하다는 은잔이 나왔습니다. 베냐민은 꼼짝없이 이집트에 죄인으로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우려했던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야 마는 법칙처럼 말입니다. 다시 요셉 앞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닦달을 하는 요셉에게 그들은 진실의 샘에서 물을 길어 올렸습니다.

    이번에는 넷째 형인 유다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막내의 바로 위가 되는 형의 얘기부터 시작해서 집안 얘기를 소상하게 아뢰게 됩니다. 그 내용은 이랬습니다. 자신들의 늙은 아버지는 늘그막에 아들을 낳았는데, 한 배에서 낳은 그의 형은 죽고 그 애만 남아서 부모가 애지중지하게 되었다는 것에서부터 그 애를 데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부친은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막내가 이곳에 남아 옥살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 부친의 슬픔과 절망을 두고 볼 수 없다며 자신이 그를 대신해서 이곳에서 모든 벌을 다 받겠다고 말입니다. 요셉은 유다 형의 탄원을 더 듣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모국어로 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가장 궁금해 하던 고향집 얘기를 들을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동생 베냐민이 부모님의 총애를 받는 것을 시기 질투하는 형들의 입에서 이런 끈끈한 혈육의 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 형들이 지은 죄는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습니다. 지금 현재 진행형인 얘기들은 자신이 꾸민 각본에 의해서 만들어진 내용들입니다. 요셉은 어떻게 하면 현명한 매듭을 지을까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진실한 고백을 밝히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시사 하는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시련과 역경이 가족을 더욱 끈끈히 엮어준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말 속에는 그렇게도 가난했던 시절이 그리워지고 애틋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고난을 함께 짊어진 사람들 특히 가족과 부모님들에 대한 효심이 솟아난다는 점입니다. 셋째는 가족을 위해서 희생의 짐을 기꺼이 짊어지겠다는 아름다운 생각입니다. 우리말에 고운 정 미운 정이라는 말이 있는데, 참으로 기가 막힌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고운 정이야 누군들 이해할 수 있겠지만, 미운 정이라는 말은 삶의 우여곡절을 맛본 사람들만이 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말이라고 말입니다. 요셉은 넷째 형 유다에게서 미운 정을 새삼스럽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졌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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