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9063(2026. 3. 10. 화요일).

시편 31:4-6.

찬송 34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절망적인 기분이 들 때의 처방전으로 <장님>이란 시를 썼습니다. “희망도 없이 비탄도 없이, 그는 머리를 수그리고 벽에 기대어 앉아 있습니다. 아무것도 보지 않는 자는, 보이지도 않는 자입니다. <중략> 내게는 보이지 않으니 그대들도 보지 않겠지. 그대들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그대들은 없는 거겠지.” 에릭 케스트너, 김은주 역, 마주보기, p.96.

 

2. “요셉이 자기 정체를 드러내다(1-15)”을 읽었습니다. 얼마 전 대학 동기 한 사람이 자녀들 권유로 하와이에서 생일잔치를 하고 왔노라 며 커피를 샀습니다. 물론 점심은 예정된 친구가 낸 후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지난 코로나 펜데믹 때 아내를 잃은 친구도 있었고,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며 만나면 제 부인을 험담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느 유행가 가수의 노래 제목처럼 <요지경 세상>입니다. 생일잔치를 하와이에서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외톨이 기러기가 되어 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이렇게 얽히고 설 켜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마침내 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자리를 만든 것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나이는 창 41:46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의 나이 서른 살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그가 팔려갈 때의 나이가 17살이었으니(37-50), 형제들을 만났을 때는 풍년 7년과 흉년 7년을 포함하면 적어도 마흔 살 전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형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서로가 헤어진 지 20년이 훌쩍 흐른 뒤였으니, 그 만남은 얼마나 애틋하고 간절하였을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요셉은 형제를 제외하고 이집트인 시종들을 다 밖으로 내 보낸 후, 형들에게 자신이 요셉인 것을 밝힙니다(1-4). 그리고 형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문제, 자신을 죽이려고 했고 먼 이집트 나라로 팔아버린 문제를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과 민족을 구하시려고 자신을 일찍 이집트에 이주시켰다고 말입니다(5-8). 그리고 지체하지 말고 부모님을 가나안에서 모셔오도록 명을 내립니다(9-13).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동생 베냐민의 목을 안고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14-15). 갑자기 우리나라 이산가족 상봉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역사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는 독일의 철학자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역사의 큰 줄기에서만이 아니라, 갑남을녀를 대표하는 우리들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필연을 믿고 역사의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새겨 넣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외딴 섬과도 같은 이국땅에서, 삶의 순간순간을 꼼꼼히 기록하듯 살았을 요셉은 우리들이 스쳐 지나칠 수 없는 위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시에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지루하고 힘겨운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 삶에도 의미와 목적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만나고야 말겠다는. 그리고 자식의 성공을 두 눈으로 반드시 보게 될 거라는. 이종 조카 두 형제가 행정고시에 나란히 합격되었다며, 군수님과 서장님이 다녀가시는 등 시골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합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저의 이종 사촌 누이는 뙤약볕의 김매기를 마지않았다 했습니다. 요셉의 감격만큼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이종 사촌 누이는 초등학교가 학력의 전부였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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