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090호(2012. 7. 28. 토요일).
시편 22:1-3.
찬송 27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뛰어난 시인 김득신을 보다 유명케 한 것은, 모든 사람에 대한 그의 남다른 인정 때문이었습니다. 그걸 잘 나타내주는 것으로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한번은 김득신이 잠시 친구 집에 머물면서 공부를 할 때였습니다. 그날 역시 책을 소리 내어 읽고 있는데, 친구 집 하인 한 명이 커다란 솥을 지고 들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김득신은 무슨 솥이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하인은 빚진 집에서 돈이 없다고 하니, 도련님이 대신 가져오라고 했다고 대답합니다. 그 말에 김득신은 그날로 친구 집 대문을 나서버렸습니다. 뒤늦게 그걸 안 친구는 바로 김득신을 따라가 잘못했다고 수없이 빌고 솥도 당장 되돌려 보냈다고 하지요. 타인에게 야박하게 구는 걸 참지 못했던 김득신의 평소 모습이 그대로 들어나는 일화입니다. 어쩌면 같은 책을 만 번씩 소리 내어 읽는 것도, 김득신의 남다르게 인정 많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책을 펴낸 한 전업 소설가는 요즘 고민 중이라고 했습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전업소설가니 가난한 거야 쉽게 짐작할 수 잇지요. 하지만 가난하든 않든 작가들은 소설책이나 시집을 내면, 주위의 가까운 이들과 책을 서로 그냥 주고받으며 증정하는 게 보통의 관행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도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다른 작가들의 책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자신으로써는 막상 책 증정본이며 우송료까지 부담하면 책을 내고 받는 인세를 초과하는 건 고사하고 빚을 질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그동안 받은 책을 생각하면 그냥 있을 수도 없고, 차라리 책을 그냥 주고받는 관행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러면서 그는 김득신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증정 받은 책을 김득신처럼 만 번이 아니라, 단 한번이라도 끝까지 읽어만 준다면 그런 사람에게라면 빚을 져가면서라도 책을 보낸 보람이 있을 거라고 했지요. 그러다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는 자신이 야박한 건가 되물었는데, 때로 참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한 게 야박과 인정 사이가 아닐까 싶어집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5월 31일 방송>b.
2. 주님의 재림은 마지막 우주적 파국 후에 오게 될 순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들 개인들이 맞게 되는 죽음과 직결되는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주적 파국인 최후의 종말을 직접 경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주님의 재림과는 연결될 것이라고 하는 점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개인적 종말은 개인 개인의 죽음으로, 우주적 파국은 온 세상의 멸망으로 오는 것이지만, 그리고 개인적 종말과 우주적 파국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잠자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에게는 시간을 느낄 수 없음으로,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한다는 점에서는 똑 같은 결과가 될 것이라고 하는 점입니다. 그럼으로 개인적인 종말과 같이 매일 매일을 종말론적인 자세로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란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하겠습니다.
종말론적인 자세, 사랑해야 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과 함께, 불쌍히 여겨야 할 사람들도 지나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두 번 다시 그런 기회는 오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조금도 여유로움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기회에 있어서,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기회에 있어서 말입니다. 맡은 일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매일이 최선의 날이어야 할 까닭입니다. 이를 두고 주님은 깨어있는 삶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삶을 충실하고 바르게 채웠는지 여부를 반드시 따져보시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들 모두가 직면할 하나님 심판의 참된 모습일 것입니다.
3. 기록적인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날씨에도 소록도에서 봉사를 하신 김필승전도사님이나, 오늘 베트남으로 떠나시는 이석윤장로님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좋은 이웃들 속에서 살고 있는 행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묵상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란트 비유에서 배울 것 하나. / 마 25:14-30. (0) | 2019.05.10 |
---|---|
천국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 마 25:1-13. (0) | 2019.05.10 |
우주적 파국에 맞설 자는 없습니다. / 마 24:15-31. (0) | 2019.05.10 |
종말의 때를 살고 있는 우리들. / 마 24:1-14. (0) | 2019.05.10 |
사랑보다는 증오심을 가르치는 오늘의 교회. / 마 23:27-39. (0) | 2019.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