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229호(2012. 12. 14. 금요일).
시편 55:20-23.
찬송 41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9세기 접어들면서 비주류 갈래로 간주되던 풍경화가, 중요한 미술 표현 방식으로 떠올랐다. 풍경화는 19세기에 나타난 미술의 급진적인 변화 과정에 가장 많은 기여를 했다. 풍경화를 중요한 장르로 주목한 최초의 미술가들은 낭만주의자였다. 1802년 ‘모든 것이 전보다 더욱 가볍고 빛이 났다. 모든 것이 풍경으로 이끌려가고 있다.’ 라고 말할 당시, 필립 룽게는 당대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무엇이 될 것인지 예건한 듯하다.” 윌리엄 본의 낭만주의 미술에 나오는 설명입니다. 그전까지 풍경화는 정식 미술, 정식 예술로 취급되지 않았습니다. 역사화와 종교화가 주류였던 시대의 풍경은, 인간을 그리는 데 쓰이는 배경에 불과했지요. 자연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인간과 더불어 인간처럼 존재하는, 존재 자체로 보지 않고, 신의 섭리가 들어나는 도구나 부속물로 봤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낭만주의가 등장하면서 자연을 그 자체로 보고 그리고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연과 풍경이 그 자체로 소중하고 아름다우니, 룽게가 말한 “모든 것이 전보다 더욱 가볍고 빛이 난다. 모든 것이 풍경으로 이끌려가고 있다.”는 표현도 가능했겠지요. 명절은 조상과 집안 어른들을 찾아뵙는 가장 전통주의적인 날입니다. 하지만 명절은 또 사람 못지않게 고향과 자연을 찾는 그런 날이기도 합니다. 가장 낭만주의적인 날이라고 할까요? 그런 날을 어디에서 맞든, 룽게의 표현에서처럼, 모든 것이 전보다 더욱 가볍고 빛이 나는 그런 기분으로, 모든 것이 풍경으로 이끌려 가는 듯한 그런 마음으로, 풍경화가 미술의 역사를 새롭게 변화시켰듯, 새로운 변화에 대한 설레임으로 준비하고 맞이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9월 26일 방송>b.
2. 복음가 중에 <왜 날 사랑하나?> 라는 제목의 찬송이 있고,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도 <아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찬송은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고 감사한 찬송입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 봐도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지극히 조건적이며 합리적인데 반해서,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비합리적인 때문입니다. 적어도 저 자신에 대해서만은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사도는 하나님의 예정하심이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제외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 누구도 항변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우리는 믿음 가운데 세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예정하심입니다. 오늘 저는 3장 2절의 말씀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구절에서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나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인도하셨거나, 강권하신 때문에 믿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은총이 어디에 있습니까? 논리적으로 믿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도덕적인 모습을 갖췄다 해서 믿음을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까닭 모르게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된 것입니다. 황공무지라고 밖에는 다른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처음부터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라는 2장 13절에 몸 둘 바를 몰라야 하는 것입니다. 훗날 사도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5) 라면서 당당했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사람으로서, 오늘도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백성답게 말하고 일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3. 천사운동을 시작한 지도 20년이 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천사가 되어서 기도해 주고, 사랑을 나눠주는 것은 생각한 것 보다 얼마나 기쁘고 기쁜지 모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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