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296(2013. 2. 19. 화요일).

시편 시 73:1-3.

찬송 5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1129일 뉴욕의 유엔총회에서 역사적인 표결이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자격을 유엔의 비회원 참관 단체에서 참관 국가로 승격시키는 결의안에 대해서인데, 결과는 압도적인 찬성이었습니다. 찬성 138표 반대 9표 기권 41. 3분지 2가 훨씬 넘은 나라들이 팔레스타인 국가에 출생국으로 발급해 주는데 지지해 준 셈이지요. 이 표결을 앞두고 독일 역시 미국 이스라엘 캐나다와 함께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습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예상을 깨고 기권표를 던졌는데요. 다니엘 바렌보임이 독일 총리실에 보낸 메시지가 결정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 자신이 유대인이면서 독일 총리에게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에 반대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메르켈의 결심은 바뀌었습니다. 바렌보임마저 이스라엘의 강경 정책에 등을 돌리는 상황인데, 독일이 굳이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자신의 조국이자 뿌리인 이스라엘에 대해서, 정면으로 비판하는 바렌보임의 행보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음악 다큐멘터리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바렌보임이 이스라엘 의회가 수여하는 울프 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밝히지요. 그는 이스라엘의 독립선언문 가운데 모든 접경국 그리고 그 국민들과 평화와 우호를 유지할 것을 약속한다.” 이 항목을 인용하면서 말합니다.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남의 땅을 점령하고 그 국민을 지배하는 것이 독립선언문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입니까? 독립이라는 미명하에 다른 나라의 기본권을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요? 우리 유대민족이 고난과 박해의 역사를 보냈다고, 이웃 국가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그들의 고통을 모르는 척 하는 것에 면죄부가 주어질까요?” 또박또박 이어나가는 바렘보임의 발언들,  나라에서 주는 상을 받는 자리에서 하는 말이라고는 믿기 어려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교육부 장관은 이 연단을 국가를 공격할 기회로 삼았다면서 노골적으로 분노했고, 다른 사람은 날 죽이려고 하는 사람과 어떻게 화해하느냐? 그런 사람들과는 전쟁을 해야 한다. 라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러나 바렌보임은 그런 분노 그런 비난에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지요. 못들은 척 하지도 않았고 또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흔들림 없이 차분히 대응합니다. 하긴 이런 굳은 신념과 굽힐 줄 모르는 용기가 없었다면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창단할 꿈도 꾸지 못했겠지요.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이 이야기는 내일 또 이어드립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1210일 방송>

 

2. 저주받은 무화과나무 일화들 중간에 성전 청결 일화가 들어 있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설교가 들이 가장 설교하기 힘든 본문의 하나로 꼽는 것은, 자연을 저주하신 것이라는 점과 철도 아닌 무화과 열매를 억지로 찾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문자적이나 인과응보 식의 해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상징 혹은 의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간에 들어 있는 성전청결 기사가 그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으로 인식되었습니다(28:16-19). 그래서 하나님과 예배자의 만남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16). 그러나 결과적으로 성전은 그 본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성전에는 이미 하나님도 보이지 않고,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해관계로 눈먼 장사꾼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눈먼 장사꾼 된 선민 이스라엘과, 장터가 되어버린 성전을 무화과로 등장시킨 것입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겉모양만 그럴 듯 하고, 목소리만 은혜 충만한 이스라엘이 딱 그 모습이었습니다. 의미와 목적을 멀리할 때, 자연스럽게 불거지는 것이 세속주의입니다. 오늘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바로 그 같은 모습입니다. 설교가 설교답지 못하더라도 십자가만 볼 수 있다면 그래도 희망은 남아 있다고 하겠는데, 그 십자가마저도 사라진지 오래되었습니다. 한 인간의 얼굴이 예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대형 스크린에 비춰지고 있습니다. 그런 인간이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성공주의 외에 달리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기독자라는 사람들이 물불가리지 않고 정치전선에 올인 하고 있습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로 밖에는 상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런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런 기독자들을 저주하실지 두렵습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들을 계속 바라보시지 않도록 해야 하겠는데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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