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291호 (2013. 2. 14. 목요일).
시편 시 71:22-24.
찬송 44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방으로 들어와 수첩을 폈습니다. 학교 게시판에 언젠가 한 남학생 선배가 지금의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글을 푸념하는 글을 썼습니다. 그러자 그 푸념 글에 많은 답글이 달렸지요. 너무 힘들겠다고 그러나 곧 좋은 날이 올 테니, 조금만 참으라는 위로의 글이 정말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음처럼 따끔하게 일침을 놓는 글도 있었습니다. “겨우 그 정도 가지고 힘들다 하시니, 노력이 부족하시네요. 저는 3년 전에 그 쪽보다 몇 배는 힘들었습니다. 매 학기마다 과외를 다섯 개 여섯 개 씩 하면서 버텨야 했지요. 과외 하다가 코피 터진 적도 많아요. 너무 힘들어하는 날엔 학생들이 안 되겠다고 부모님께 야외 수업한다고 거짓말을 해 준적도 있지요. 선생님 쉬게 해 준다고 말입니다.” 거기서부터 얼마간은 답글이 그와 그를 배려한 어린 학생들의 기특함에 모아졌습니다. 물론 공부하기 싫던 차에, 좋은 핑계거리가 생겼겠다 는 농담도 있긴 했지요. 하지만 모두가 그 답글 주인공의 치열했던 시간에 존경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바로 그 답글을 오려 두었었습니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읽곤 했었지요. 자신은 그래도 다섯 개의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한 적은 없습니다. 코피를 흘린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너무 힘들다는 생각으로 짜증을 내고 화풀이를 하듯, 후회될 일을 했으니 스스로 부끄러웠습니다. 내일은 백화점에 가서 옷을 아버지 옷으로 바꿔야 하겠다고 수첩에 글을 들여다보면서 굳게 결심해 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312년 11월 19일 방송>b.
2. 지금도 기도처인 교회나 절간만이 아니라, 한국의 온 마을과 산야에는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기도에 열심일까요? 한 두 마디로 요약한다면, 부귀영화를 누리는데 가장 큰 목적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할 태세입니다. 물론 지금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은 바로 후자의 얘기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더 바랄게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지고 싶은 것들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죽은 다음의 세계, 내세에도 편안히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의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그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했고, 그가 계명을 잘 지켰다고 말하자, 그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영생을 위해서, 혹은 내세에 잘 살기 위해서 전대를 풀어놓으라는 말씀에 조금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영생의 삶이란, 또는 내세의 삶이란 무엇일까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그것은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하루 세끼 밥 그 이상을 먹을 수 없는 하루라면, 그 이상은 부정한 축재요 악행이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필요를 가로채서 창고에 처넣고 문을 잠가버렸기 때문입니다. 같은 의미로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은 그걸 풀어서 부족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라는 뜻입니다. 재능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회는 이를 청지기 정신이라고 말합니다. 시간의 청지기가 돼야 하고, 재물과 재능의 청지기가 되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잠깐 맡아서 관리하는 관리자에 불과하다는 신학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고백에 주님은 흔쾌히 말씀하십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짐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중략> 백배를 받게 된다”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말씀하는 백배는 수치상의 가치가 아니라, 셈할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누릴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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