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577호(2019. 5. 20. 월요일).
시편 10:7-9.
찬송 30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프랑스 파리의 판테온은 원래는 교회였지만, 이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웅과 위인들이 안장된 국립묘지 건물입니다. 국립묘지이지만 우리 식으로 풀밭에 비석이 있는 묘지는 아니지요. 큰 건물 안에 방 마다 세상을 떠난 위인들의 석관이 배치되어 있는 건축물로 된 묘지입니다. 그곳에는 볼테르와 빅토르 위고 장자크 루소 등, 저마다 각 방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 방에 두 개의 대리석 석관이 있습니다. 바로 마리 퀴리 부부의 방입니다. 그렇게 부부가 함께 판테온이 묻힌 건 그들 부부 뿐입니다. 그런 부부의 석관 앞에 서면, 비로소 그 부부가 실제 존재했던 부부이고, 마리 퀴리가 실재로 살았던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게 비로소 실감합니다. 너무나 위대한 주인공들은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실감이 잘 안 갈 수도 있는데, 묘를 대하니 오히려 그 실제의 삶이 실감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새삼 더 감탄하게 됩니다. 어떻게 여성에게 공부하는 것 자체도 힘들었던 시대에, 노벨상을 그것도 한번이 아닌 두 번씩이나 수상할 수 있었을까? 와중에 딸을 집에서 가르치는 홈스쿨링으로 키웠는데, 그런 딸까지 노벨상을 받았으니, 엄마로써 얼마나 훌륭했던 걸까, 정말로 감탄스러워집니다. 마리 퀴리, 1867년 11월 7일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섯 남매 중에 막내였고, 원래 이름은 마리아 스쿼도프스카였습니다. 마리의 부모님은 모두 교사였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물리학 교사이면서 너무나도 가정적이어서 집안은 늘 화목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폴란드어로 쓴 학생의 답을 정답으로 채점하면서, 교사직을 박탈당하지요. 그리고 엄마도 폐결핵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면서 화목했던 집안은 불행과 가난이 찾아들었지요. 그런 형편 속에서도 마리 퀴리는 공부를 뛰어나게 잘했습니다. 거기다 어린 마리의 애국심과 인간에는 아버지의 못지않았지요. 그러니 아버지의 고초를 봤으면서도 그녀는 폴란드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몰래 폴란드 어를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야 할 열 일곱 살이 되었는데, 어려운 형편 때문에 도저히 대학엘 갈 수 없게 되자, 그녀는 언니에게 한 가지 제의를 합니다. <KBS FM 1 가정음악 2019. 5. 6. 방송>
2. “새 생활의 인간관계(3:18-4:6)”과 “작별 인사(4:7-18절)”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첫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기독교인으로 살기 이전이나 이후, 모두 인간관계는 피할 수 없는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인간관계들 중에서 특히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 관계, 주인과 종의 관계 맺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저의 도봉산 산책길에는 인산인해가 따로 없었는데, 저의 첫 쉼터 역시 사람들이 많아 서 있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다행히 빈자리가 생겨서 자리를 잡고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는데, 여든 여섯이라고 나이를 밝히신 한 어른이 짐승들은 오륜을 지키는데,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며 탄식하셨습니다. 제가 그 해설을 옮기지 못해 유감이지만, 짐승들은 君臣有義, 父子有親,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을 제대로 지킨다며 조목조목 풀이를 하셨습니다. 결국 인간들이 짐승보다 못하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런 윤리가 잘 지적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이런 인간관계 맺기에 관한 말씀은, 21세기의 우리들을 대상으로 하는 말씀이긴 하지만, 그 말씀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은 2천 년 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선 무슨 뜻이었느냐(What it meant?)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2천 년 전의 사람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였느냐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부부관계를 말씀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아내가 손해 보는 장사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목숨을 다하는 사랑을 남편이 하고 있다면, 자기를 포기하는 순종은 할 만하다 하겠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는 자녀를 힘들게 하거나 의기를 꺾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지막으로는 주인과 종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는데, 종 된 사람은 주인에게 복종하고, 땅의 주인은 하늘에 계신 주인을 생각하며 정당하고 공정하게 자기 수하의 사람들을 대하라고 하십니다. 21세기의 인간관계 역시도 상대에 대한 배려는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것은 변함없다는 말씀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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