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367(2013. 5. 1. 수요일).

시편 시 89:1-2.

찬송 34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도착지점에 도착하였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 주었지만, 그곳은 도착지점일 뿐 목표지점은 아니었습니다. 목표 지점은 내비게이션에 잡히지도 않고 더 이상 차도 진입할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니 차에서 내려서 이 낯선 길을 걷기로 합니다. 지나가는 동네 주민에게 그곳이 어디쯤이냐고 물었습니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말해 줍니다. 참 다행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발걸음도 가볍게 그곳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걸었는데도, 그곳은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마주친 다른 동네 주민에게 다시 물었지요. 얼마나 더 가야 되느냐고 손가락으로 길을 가리키며 알려줍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길을 산길로 이어지고 있어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지만, 조금만 더 가면 된다니, 가보기로 합니다. 비탈진 산길을 오르느라 다리는 후들거리고, 목에선 쇤 내가 올라옵니다. 잠시 앉아서 숨을 고르는데,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알려줍니다. 조금 만 더 가면 된다고, 쉬면 더 힘드니까 얼른 일어나서 가라고. 그러나 아무리 가도 가도 그곳은 아직 보이지를 않고, 차오르는 숨 때문에 가슴은 터질 것 같습니다. 조금 만 더 가면 된다고 알려 줬던 사람들을 붙들고 따지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조금 만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달라서 생긴 일일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길 위에서 만난 그 사람들이 조금 만 더 가면 된다는 그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먼 길을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길이란 아마도 그렇게 가는 거겠지요. 오늘 조금만 더. 지금 조금만 더. 징검다리를 놓아가면서 내를 건너 산을 넘어, 그렇게 끝까지 가는 거겠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415일 방송>

 

2. 오늘 본문은 세 가지 일화를 전하고 있습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낸다는 비유의 말씀과(16-18), 혈통적 관계보다는 신앙적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서(19-21), 그리고 믿음이 없는 제자들을 꾸짖으신 일화(22-25)가 그것들 입니다. 저는 세 번째 말씀, 풍랑 앞에서 부들부들 떨었던 제자들을 책망하신 일화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저도 부산과 거제도를 왕복하는 배를 타본 적이 있는데, 그 때 가덕도 앞을 지날 때 풍랑을 만나서 두려워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위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광풍이 불었고, 배는 물에 가득 차오르는 형편이라면 아마 저는 사색이 되어서 아무 말도 못했을지 모릅니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주님이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곁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주여! 주여! 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새머리의 정신빠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주님이 그들 곁에 없으니 희망할 일말(一抹)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제자들에게는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을지 난감합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절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처럼 어쭙잖은 목사들에게 경고하십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고 말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믿음이 전혀 없구나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우리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그들의 문제는 믿음이 없는 것은 물론, 믿음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지하게 그리고 진실 되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믿음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고 말입니다. 그걸 저는 신뢰라고 생각하며 믿습니다. 모든 걸 다 주님께 맡기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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