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800호(2025. 6. 20. 금요일).
시편 119:144-146.
찬송 44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 인권선언> 제2조에는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견해, 또는 그 밖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그 밖의 지위 등에 따른 어떠한 차별 없이,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다원화된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장애인, 성적 소수자, 이주노동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탈북자, 특수 종교인 등은 우리 사회에서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고 소수자로 살아간다. 무시하지 못할 숫자이지만, 이들은 다수자가 아닌 소수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소수자들은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살고 있다. 이들을 위한 인권은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인간을 이해하는 아홉 가지 단어, pp.12-19.
2. “수종병자를 고치신 예수(1-6절)”과 “낮은 자리에 앉으라(7-11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자료를 둘째 단락입니다. 서울에 올라오면 중고서점인 알라딘을 자주 들리는 편인데, 어제는 16세기의 철학자 드 라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과 한국 철학사상 연구회가 펴낸 <인간을 이해하는 9가지 단어>라는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특히 <인간을 이해하는>은 요즘 우리 사회적으로 그리고 교회 안에서 뜨겁게 회자되는 소수자의 문제를 다룬 책이어서 흥미를 가지고 읽었습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힘든 좁은 문을 향해서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대세의 물결에 휩쓸리면 크게 고민도 걱정도 두려움도 없이 살아갈 터인데, 굳이 쉽고 넓은 대로를 포기하고 좁은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에게는 이중의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윗자리를 서로 앉으려는 사람들을 보시고,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는데,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았을 경우, 혼주가 권하지도 않았을 때, 스스로 윗자리에 앉지 말기를 부탁하셨는데, 까닭은 나중에 그 사람보다 더 높은 사람이 들어설 경우에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할 테니 얼마나 무안한 일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초대를 받았을 경우, 처음부터 맨 끝자리에 가서 앉아 있는 것이 좋겠다 시며, 혼주에 의해서 맨 아랫자리에서 조금 더 윗자리로 옮겨 앉게 되는 것이 명예롭게 보이지 않겠느냐며,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찍이 노자는 “부드럽고 연약한 것이 굳고 강한 것을 이긴다.”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 이라고 말했다 합니다. 인생을 힘겨루기로 여기는 세상 탓에, 사람들은 아프게 살고 있습니다. 거칠고 굳센 인생보다는 부드럽고 연약해 보여도 꿋꿋한 인생이 강한 생명력을 지녔음을 우리는 깨우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노자가 말하고자 했던 인생은 이기고 지는 경기로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인생이란 때와 더불어 앉을 자리 설 자리를 가리고, 할 일과 맡은 일을 수행하는 일인데, 마치 토끼몰이 하듯 후리는 삶이라면 모든 일들이 고단한 짐이 될 뿐일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고 연약한 새싹처럼 지닌다면 허황한 욕심이나 오만함에서 자유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 백 수천 년 전의 사람들도 이런 문제로 가슴앓이를 했던 모양입니다. 당나라 고종 때 장공예라고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의 집에는 9대가 한 집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 "3대도 한 집에서 살기 어려운데, 어떻게 9대가 한 집에서 살 수가 있느냐? 그 비결이 뭐냐?"라고 물으니까, 장공예는 아무 말 없이 종이를 꺼내 놓고서 '참을 인(忍)'자를 백번 썼다고 합니다. 이를 안중근의사가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太和란 유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남겼습니다. 잘난 체 하고 싶고, 위세를 떨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더라도, 이를 잘 억제하고 잘 참는 사람이 자신은 물론 온 세상을 편안하게 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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