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797호(2025. 6. 17. 화요일).
시편 119:135-137.
찬송 24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텅 빈 방 안에 있다. 장자는 텅 빈 방이 태양을 낳는다(虛室生白).고 했고, 텅 빈 것에서 즐거움이 나온다(樂出虛) 고도 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청빈의 삶을 으뜸으로 삼았다. 청빈은 궁하게 사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는 것이 곧 청빈이다. 마음속에 불타오르는 장작불처럼 물욕을 철저하게 다스리면서 검소하고 수수한 인생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청빈이다.” 윤재근, 살아가는 지혜는 가정에서, p.125.
2. “안식일에 병을 고친 예수님(10-17절)”을 읽었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율법은 생명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이른바 613개의 율법은 “하라”는 긍정적인 것은 248개이며,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것은 365개입니다. 그 중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주목하는 것이 안식일에 관한 시행세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39가지로 부정적인 내용입니다. 씨 뿌리기, 밭 갈기, 곡식 추수하기, 곡식 묶기, 곡식 타작하기 등에서부터, 염색하기, 실뽑기, 실 끊기, 매듭짓기, 곡식 빻기, 곡식 체질하기, 반죽하기, 빵 굽기 그리고 글씨 쓰기, 글씨 지우기, 불 끄기, 불 켜기도 해선 안 될 규정이었습니다. 그러니 안식일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어야 했습니다. 오래 전에 영화를 보는데, 미국의 한 청교도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이렇게 광고를 하였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모두 집에 돌아가셔서 점심 식사를 한 후에 여러 가지 연장을 가지고 다시 교회로 모이라는 것인데, 엊그제 호주에서 한 가정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는데, 집이 없어서 그분들의 집을 지어주자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교우들은 주일 오후에 교회 부근의 한 공터에 집을 한 채 짓는 일을 합니다. 주님은 안식일에 일을 하셨습니다. 어떤 일이었습니까?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 곧 생명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는 일이었으며, 배고픈 사람들에게 밀 이삭을 잘라 먹도록 배려하는 일이었습니다. 안식일은 하릴없이 무작정 노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참된 평안과 기쁨 그리고 희망을 주는 일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로 인해서 많은 유대 지도자들과 논쟁을 벌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18년 동안 허리가 꼬부라진 여인의 병을 고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는데, “18년 동안 귀신 들려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성경에서 어떤 병자의 병명을 말할 때 귀신들렸다는 진단(?)이 많이 등장하는데, 1세기 당시의 의학적인 상식이나 진단으로써는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질병에 대해서는 “귀신 들렸다”는 표현이 적절했던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정신 질환자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고칠 수 없는 난치병이나 불치병에 대한 일반적인 진단(?)으로 이해해야 옳을 것입니다. 아무튼 18년 동안이나 꼬부라진 허리를 펴지 못하는 여인을 주님께서 안수하시고 고쳐 주셨으니,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찬양할 놀라운 기적이었고, 예수님을 배척하던 유대 지도자들에게는 시빗거리가 생긴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병을 고칠 수 있는 날을 굳이 안식일로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엿새 동안에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이 위선자들아!”라고 호통을 치시며, 비록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자기들의 소나 나귀를 풀어 물을 먹이지 않느냐면서 18년 동안을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 여인을 사탄의 사슬에서 풀어주지 말라는 말이냐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잘 지킨다는 유대인들 역시 실제적인 면에서는 안식일에 해선 안 될 일을 했다는 지적을 하신 것입니다. 또 다른 말로는 유대인을 포함해서 모든 인간들은 율법을 제대로 지킬 수가 없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누구도 율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죄인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새삼스럽게 율법이 역할에 대해서 진지한 숙고가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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