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405(2013. 6. 8. 토요일).

시편 시 97:5-8.

찬송 29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린 오누이는 낡은 신발 한 켤레를 번갈아서 신고 있습니다. 오빠가 여동생의 신발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아들아, 뭘 사줄까?” “신발이요.” 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무 것도 사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해맑은 미소만 지었습니다. 동생이 불평합니다. “오빠 운동화는 신기 싫어. 냄새나서 창피해.” 속상했습니다. 자기 운동화가 낡고 냄새나서가 아니었습니다. 동생에게 새 신발을 주지 못해서였지요. 그래서 3등이 되기 위해 달렸습니다. 마라톤 경기에서 3등을 하면, 운동화를 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뙤약볕이 쏟아져도 넘어져도, 용수철처럼 일어나서 달리는 이유는, 오로지 동생에게 새 신발을 주고 싶어서 옅습니다. 그런데 너무 열심히 달리는 바람에, 3등을 해야 하는데 1등을 해 버렸습니다. 서러워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습니다. 하나 뿐인 운동화는 열심히 달리느라 밑창까지 뜯어졌고, 발은 온통 물집과 상처투성이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우는 게 아닙니다. 동생에게 꼭 신발을 주고 싶었는데 주지 못해서, 그게 아파서 웁니다.

   이란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 나오는 아이들의 현실은, 지독하게 가난해서 천국과는 멀어 보입니. 그런데도 <천국의 아이들>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아마도 갖지 못해서가 아니라, 주지 못해서 아픈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주고 싶은데 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주고 싶을 때 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천국의 마음이 아닐까 하고 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527일 방송>

 

2.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불리는 본문입니다. 우리는 사후(死後) 세계에 대해서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죽음이라는 말조차 떠올리지 않고 싶어 합니.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 한 구석에서는, 죽음과 함께 올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참 좋은 말씀입니다. 첫째는 죽음은 부자든 거지든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항상 곁에 있어줄 것 같았던 지인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있으니, 저와 여러분도 그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서 지옥과 천국으로 갈려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은 윤리적인 면이 강조되는 듯 합니다만, 사실은 신앙이 강조되는 말씀입니다. 부자의 경우를 먼저 생각해 봅시다. 그는 아브라함의 말처럼, “좋은세상에서 살았습니다. 모든 것이 넉넉하고 행복했습니다. 오래 사는 것 말고는 달리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부자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전부로 알고 살았습니다. 그에게 이 세상은 천국이고 신앙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지 나사로는 달랐습니다. 그에게 이 세상은 지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옥 같은 이 세상을 더 이상 의지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또 다른 세상, 천국을 사모했습니다. 적어도 천국을 사모하는 그 시간만큼은 그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상 천국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방향성에 대해서 깊은 통찰력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향해서 사느냐? 무엇을 바라보고 한걸음 한걸음을 옮기느냐?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지 모릅니다. 부자의 삶의 방향과 거지 나사로의 삶의 방향은 그들의 신앙과 동일시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게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신앙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나사로는 천국만을 바라보며 살았고, 부자는 지옥만을 바라보며 살았던 셈이니까요. 지금 우리는 어디를 바라보고 살고 있는 걸까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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