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402호 (2013. 6. 5. 수요일).
시편 시 96:6-10.
찬송 411 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폭풍우 속을 항해하는 나룻배처럼 위태로웠습니다. 9회 말 투 아웃을 당한 투수처럼 절박했습니다. 이대로 끝인가 보다 단념하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피땀 흘리면서 기우린 수많은 노력들이 과연 무슨 소용이며, 어떤 가치가 있었을까? 회의감이 뼛속에 사무쳤습니다. 가진 것을 모조리 쏟아 부어도, 실패를 모를 수는 없습니다. 실망이나 낙담을 모르고, 전진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땐, 어쩔 수 없이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왜 이렇게 노력해야 하지? 그 물음에 누군가 현명한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를 존경할 수 있게.” 그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지금 당장은 실패가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 훗날에 실패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더 노력할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스스로 버렸다는 사실일지 모릅니다. 오세영 시인은 <그렇지 않더냐>는 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추락하는 것들이 거듭나나니/ 땅에 떨어져 새싹을 틔우는 씨앗이 그렇지 않더냐/ 모든 금간 것들이 또 새로운 세상을 여나니/ 깨져 자신을 버림으로써 싹틔우는 씨앗이 그렇지 않더냐”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씨앗, 추락하고 금가고 깨지는 건, 새싹을 틔우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과정이지, 결코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을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5월 20일 방송>
2. 세계적인 문호 세익스피어가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오늘의 본문을 완벽한 단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기다리는 아버지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감동을 주고 희망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세계적인 스토리텔러였다고 말해야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의 백미는 아무래도 반전(反轉)의 계기가 되었던 돼지 우리의 체험일지 모르겠습니다. 돼지 밥그릇에서 먹을 것을 고르고 있던 둘째 아들은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과거의 모습에 투영시켜봅니다. 그 때도 나름 불만과 재미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고는 했지만, 현재와 비교한다면 천국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그 천국에는 사랑에 넘치는 아버지가 항상 곁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자신을 더 걱정하며 돌보셨던 것입니다. 그 행복한 낙원에 빠져들자, 그는 더 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은 무슨 일이 벌어져도 즐겁게 감수할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달음질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 뜨거운 장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 멀리에 손을 이마에 올리고 자기 쪽을 응시하고 있는 늙은 아버지가 서 계셨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서서 자기 쪽만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뭐라고 입을 벌리기도 전에, 와락 그 너른 품으로 끌어 안아주신 것입니다. “그래, 널 기다리고 기다렸단다. 잘 왔다. 음, 그래야 말구.” 저는 그 둘째를 돌아서가 만든 것은, 그 자신의 결단이 아니라 자신을 기다리고 계셨던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의 힘이었다고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힘겨운 비탈길을 오르고 있을지라도, 우리가 그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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