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559호(2013. 11. 9. 토요일).
시편 시 133:1-3.
찬송 23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유럽 최초의 금융재벌이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라면, 현존하는 투자은행 중 가장 오래된 회사는 로스차일드입니다. 활동했던 시기는 달랐지만, 두 가문 모두 환전 장사를 기반으로 부를 쌓았는데요. 환전이 이루어졌던 탁자 혹은 긴 의자를 이탈리아 말로 방카라고 불렀고, 이것이 은행을 뜻하는 뱅크의 어원이 됐다는 점은, 메디치 가문과 로스차일드 가문이 환전장사로 금융업에 진출한 과정과 일치해서 흥미롭습니다. 19세기에 로스차일드 가문이 얼마나 기가 막히게 돈을 벌어들였던지, 동시대를 살았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이렇게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돈은 우리 시대의 신이며, 로스차일드는 돈의 예언자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둘 다 비슷한 방법으로 부를 쌓았는데, 메디치는 르네상스시대를 탄생시키는데 큰 기여를 한 영광의 이름으로 남았고, 로스차일드는 음모론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막강한 정보력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정치 경제를 주무르고 있고, 심지어 이들의 최종 목표는 단일 정부를 만들어서 신처럼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인데요. 그들은 어쩌다 이런 음모론의 단골로 등장하게 됐을까요? 음모론은 눈에 보이는 사건은 있는데, 아무도 원인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때, 말을 하더라도 설득력이 없을 때 등장합니다. 19세기 중반 유럽의 최대 재벌은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럽인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자신들이 그토록 차별하고 멸시하는 유대인이, 유럽 대륙에서 가장 큰 은행을 소유하고 있고, 제일가는 부자라니,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웠겠지요. 그러자 곧 로스차일드가 각국의 왕실이나 정치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국제 외교를 쥐락펴락하고 있다느니, 심지어 전쟁도 그들이 최종적으로 허가해야 벌이는지 중단하는지, 할 수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집니다. 이건 음모론이기도 하지만 서양인들의 유대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알 수 있는 얘기이지요. 그러다 한동안 잠잠했던 로스차일드 가문이 최근에 다시 음모론에 등장하는 것 역시, 세계적으로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유대인에 대한 경계, 또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과 맞물려 있다는 것 같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사실 음모론의 진위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음모론이 많이 떠돈다는 건, 어떤 신호일 수 있겠지요. 명확하게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사람들이 그로 인해 불안해 한다는 반증일 테니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11월 1일 방송>
2. 본문의 소제목을 <큰 음녀가 받을 심판>으로 소개하는 주석에 동의합니다. 여기에서 큰 음녀는 바벨론이나 로마를 상징한다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성경에서 음란이나 음녀와 같은 표현은 신앙의 정절을 잃어버린 사람이나, 유일하신 하나님 신앙을 방해하는 우상 숭배자들을 상징합니다. 이런 음녀들에 의한 음란한 행동은 세상 끝날 까지 계속될 것이며, 그들이 세상 영광을 다 누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4절). 지금 우리 세대가 그 한복판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신을 현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슬프게도 그들이 타고 활개 치며 행세하던 그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은, 아주 오래 전에 무저갱으로부터 나와서 지옥으로 들어갈 짐승들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음녀들의 영광은 지옥을 향해 가는 짐승을 타고 있었다고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탄 마차는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3. 묵상식구 황호순 교수님의 아드님 백경찬교수님(서울대 금속공학과)의 금속공예전이 11. 7-13일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열리며, 묵상식구 신창범장로님의 아드님 신용우박사는 보스턴대학에서 MIT. 대학 post doctor과정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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