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599호(2013. 12. 19. 목요일).
시편 시 145:1-4.
찬송 20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어떤 끝은 절대로 끝이 아니며, 무력이야말로 나의 운명이 시작하는 곳이다.” 고모 등에 업혀 엄마가 바다에서 해초 뜯어오는 걸, 매일 기다렸던 아가가 있었습니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시절이었고, 가족은 해초를 밀기울에 버무려 밥으로 먹었습니다. 고모 등에 업혀 있던 아가가 말했습니다. “고모, 별 따줘. 먹으면 배부르겠다.” 그렇게 별을 꿈이 아닌 밥으로 만난 소년은 시인이 됐습니다. 지난 55년간 쓴 책이 150권 이상, 그의 시는 세계25개 나라말로 번역돼 출간됐습니다. 바로 고은 시인입니다. 그는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별을 밥으로 여긴 스스로에게 열등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다른 시인들은 별을 꿈의 오브제로 여겼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1970년대 후반, 별을 꿈이 아닌 밥으로 봤던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졌습니다. 굶주렸을 때, 별 하나가 밥 한 숟가락으로 여겨진다는 건, 그만큼 삶이 절실하다는 뜻이고, 그런 절실함에서 진정한 꿈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올해로 만 여든인 고은 시인이 최근 새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수록된 시가 무려 607편, 각각의 시에 제목은 따로 붙어 있지 않았습니다. 시가 제목에 갇혀온 관습에 회의가 들어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고은 시인은 시가 외면 받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담담한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20세기 내내 세계적으로 시의 영광이 지속되어 왔지만 지금 쯤 와서는 시가 무력해야 할 때가 왔다.” 그럼에도 자신이 이 시대의 시인인 것을 최고의 축복으로 여긴다 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어떤 끝은 절대로 끝이 아니며, 무력이야말로 나의 운명을 시작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가 무력해진 이때야말로 시인으로써 운명을 다시 시작할 때라는 당당한 선언으로 들립니다. 그런데 노 시인의 말 위로 지난 5일 타계한 넬슨 만델라가 생전에 했던 말이 겹쳐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데 있는 게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데 있다.” 허리와 무릎을 세울 힘조차 없어 바닥에 엎드려져 있지만, 지금이 운명을 시작할 때라고 믿는다면, 그리하여 넘어질 때마다 일어선다면, 끝은 절대로 끝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생의 가장 큰 영광으로 비약할 수 있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12월 10일 방송>
2.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늘 주의해야 할 대목은 읽은 말씀의 중심점을 발견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읽으면서 그 본문을 한 줄로 요약해 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자칫 본말이 전도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오늘 본문은 천국을 설명하는 비유라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얘기와 같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읽는 내내 천국이 중심단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요점은 천국은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가는 나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에 주목하였습니다. 결국 천국과는 무관한 처세술로 둔갑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깨어있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저는 지난 화요일 전 의찬 교수님이 주최하신 <기후변화 대응 심포지엄>을 통해서 기후와 환경의 가치에 대해서 새로운 관심을 갖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하나 뿐인 지구가 인간의 탐욕이라는 폭력으로 몸살을 앓다 못해, 이제 멸망의 대 재앙 속으로 한 발 한 발 빠져들어 가고 있다는 깨우침 말입니다. 심포지엄 전에 강연자들과 티타임을 가졌는데, 모든 인류의 재산인 대기를 오염시킨 책임을 문명국들이 분담할 뿐 아니라, 저 개발 국가에 보상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깨어 있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단순히 대기 오염으로 남극과 북극의 빙산이 녹는 등으로 해수면이 높아지는 것이나, 최소한의 숨쉬기를 위해 CO₂의 적정 수준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무력화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입니다. 최근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태양광 등 천연 에너지개발에 힘쓸 뿐 아니라, 에너지 소비를 극소화하기 위한 공급관리형에서 수요관리형으로 개선, 현저하게 에너지 소비량을 줄여나가는 등에 희망을 걸 수 있지만, 문명의 발전 속도를 감당해 낼 수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답은 아닐 것입니다. 결국 문제는 문명화의 가속보다는 자연동화적 태도로 문제풀이를 해야 할 때라고 말입니다. 깨어있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진정 천국을 맞을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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