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598호(2013. 12. 18. 수요일).
시편 시 144:12-15.
찬송 35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집세를 내지 못한 미망인을 쫓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벨로미는 변호사 일을 접고 폐업하기로 합니다. 작가나 예술가 중에서 변호사나 법학자였다가 그 직업을 포기하고 예술가로 돌아선 사람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가장 짧은 시간에 그 직업이나 직무를 포기한 사람은 단연 벨로미가 최고일 겁니다. 그 벨로미는 신문에 자유기고가 등을 하다가, 소설 [뒤를 돌아보면서]를 씁니다. [뒤를 돌아보면서]는 소설 독자나 문단만이 아니라, 사회제도나 분위기까지 큰 영향을 끼칩니다. 이 배경은 1880년대 미국 매사추세츠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 줄리안 웨스트는 체면술사의 도움으로 깊은 잠에 빠졌다가 120년이 훌쩍 지난 2000년에 깨어납니다. 그렇게 2000년이라는 미래의 세계로 건너온 웨스트는, 은퇴한 의사인 리트박사와 그 시대 사회제도 전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바로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당시로는 까마득한 미래사회의 모습이, 실제 2000년대의 모습과 무척 닮았습니다. 작가인 벨로미에겐 미래사회를 내다보는 점술가 수준의 뛰어난 예견 능력이 있었던 걸까요? 명절이면 모인 가족들 사이에서, 미래에 사회나 삶에 대한 대화가 오갈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포기한 직업이나 진로, 새롭게 시작하려는 다른 삶에 대해 걱정과 꾸중이 쏟아질 때도 있습니다. 좋은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간다고, 딱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바로 힘이 되는 이가 에드워드 벨로미 같은 사람이겠지요. 변호사가 되자마자 딱한 처지의 사람을 오히려 더 힘들게 하는 게 싫어, 변호사를 그만둔 청년. 소신대로 작가가 돼 사회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 벨로미같은 사람이 있어서, 그런 걱정과 꾸중도 잘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힘을 얻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3년 9월 20일 방송>b.
2. 신앙의 길은 성실한 삶을 요구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영어에서도 신앙을 뜻하는 faith와 성실을 의미하는 faithful이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 본문도 종말의 날에 어떤 사람으로 서 있어야 할 것인지를 말씀하는데, “충성되고 지혜로운 일군”과 “동무들을 때리고 술친구들로 먹고 마시”는 사람들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말의 날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날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 혹은 우리의 죽음이 전혀 예상 밖인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그러니 다음으로 미루면서 매일 매 순간을 낭비할 수 없고, 오직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가장 충실하고 지혜롭게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너무도 상식적인 말씀이 아닙니까?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십자가 우편의 강도처럼,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거나 마지막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요행을 염두에 두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에 충실하지 않는 데 어떻게 미래가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제가 대학입학 시험을 여러 차례 낙방하고 준비하다가, 입영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군대 생활은 너무 다른 환경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충분한 이해나 설득 없이 무조건적인 명령과 복종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많이 갈등했습니다. 눈치껏 적당히 땜질하듯 할 것인가? 이것도 내 생애에서 한 부분일 테니 최선을 다할 것인가? 그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후자를 택하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논산 훈련소에서부터 기갑학교를 졸업하고 35개월을 복무하고 전역할 때까지 나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덕에 기갑학교 358기 1등 졸업생이 되어 학교에 남았고, 그 후 3년가량을 기갑학교를 대표하는 여러 가지 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간인 교회의 설교자로도 일할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 때부터 바쁜 인생길이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 주님이 오신다면, 자랑스럽게 주님을 맞을 수 있을까요? 물론 턱없이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습 이 대로를 받아 주실 것입니다. 성실하게 살려고 힘썼으니 말입니다. 종말론적 삶의 태도보다도 더 충실한 삶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묵상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도의 바른 자세 : 이루어질 때까지 쉬지 않고 구하기. / 눅 11:1-13. (0) | 2019.05.28 |
---|---|
이 시대에 깨어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 마 25:1-13. (0) | 2019.05.27 |
일상을 종말론적으로. / 마 24:32-44. (0) | 2019.05.27 |
종말을 살아가는 가장 훌륭한 벙법. / 마 24:15-31. (0) | 2019.05.27 |
종말론적 자세를. / 마 24:1-14. (0) | 2019.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