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739(2019. 10. 29. 화요일)

시편 44:4-8.

찬송 21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청년 신 동엽은 인 병선을 만난 후에, 그녀에게 보내고 바치는 수없이 많은 편지와 시를 썼습니다. 추경 혹은 경이라는 애칭과 성림이라는 자신들만이 애칭을 사용한 편지와 시는 가령 이렇습니다.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마음에 맞지 않아 날마다 두 세 차례씩 써서 버렸습니다. 사랑은 너무나 컸어도 언 편은 너무 작아서 옆에 있는 이만 못하구료/ 봉투 속에 아무 말도 없이 그림이나 하나 아로새겨 보낼까/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과 가장 맑은 마음을 상징하는 그림을/ 사랑 진하게 진하게 모란처럼 소복한 가득 담고 오느라/ 참새스런 깡똥한 날매 가슴 차게 안겨 오나니/ 경이여 장미처럼 매서운 향기 가시로 솟아라/ 화염한 눈웃음은 다음 장으로그런 사랑은 그런 사랑의 열정은, 머지않아 결혼으로 이어집니다. 1957년 스물여덟 살의 신 동엽은 마침내 인 병선과 결혼합니다. 서울대 철학과 3학년이었던 인 병선은 학교를 그만두고 결혼한 거였지요.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신 동엽의 고향인 부여로 내려간 두 사람에게는 곧 경제적인 어려움이 들이닥칩니다. 그러자 아내가 발 벗고 나서서 부여 읍내에 양장점을 차리지요. 신동엽도 곧 농업고등학교의 교사로 발령이 났습니다. 이제 모든 게 안정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신 동엽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폐결핵이었습니다. 그는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영향이 갈까 싶어, 아내와 아이들을 잠시 서울에 가 있도록 했지요. 그런 동안에도 두 사람의 편지에 애틋하게 이어져서, 아내는 남편에게 편지에 이렇게 쓰곤 했습니다. “입원할 생각이 있으시면 제 재봉틀을 처분해서라도 올라오세요. 경비 전부를 쳐도 입원료는 25,000원 정도니까, 과히 힘든 일은 아니에요. 우리의 심혼에 씻을 수 없는 오점만 박히지 않는다면, 회복할 수 있는 진동이 아니겠어요?” 그런가하면 그 와중에도 신동엽은 시를 쓰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 결과 서른 살이던 19591월 그는 마침내 조선일보 신촌문예에 그의 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가작 입선되면서, 정식으로 시인으로 등단합니다. <KBS FM 1 가정음악 2019. 4. 16. 방송>

 

2. “히스기야의 발병과 회복(1-11)”을 읽었습니다. 제 나이 또래라면 인사가 건강입니다. 그러면서 한 수 더 나아가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 는 말도 덧붙입니다. 신앙인답지 않은 말투이지만 저 역시도 비슷하게 인사하는 편입니다. 하루는 이사야 선지자가 왕 히스기야에게 저주 같은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당신은 병들어 죽게 될 테니, 주변 정리를 하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벽으로 낯을 향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자신이 진실과 전심(全心)으로 행한 선한 일이 있거든 그것을 기억하시라고 통곡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신탁(信託)을 전하고 성읍을 다 빠져나가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불러 세우고, 돌아가서 히스기야에게 네 기도와 눈물을 보았다며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것이며, 앞으로 15년을 더 살뿐 아니라, 앗수르의 손에서 이 성을 구할 것이라고 전합니다. 그러니까 히스기야의 발병과 회복은 순전히 하나님의 계획된 인생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며칠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간 마을 한 가족 얘기를 전한 일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실제로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오가는 실화들이 많고 많습니다. 그래서 이를 피해보려고 온갖 좋은 약재를 다 써보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 것이 우리들 모습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의 케이스에서처럼 15년이나 더 생명을 얻게 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귀를 기우릴 만한 일화입니다. 바로 인간의 생명줄을 붙잡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인간 스스로 자신의 생명줄을 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낯을 벽으로 향하고라는 구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도 의지하지도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향했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삶의 자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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