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740호(2019. 10. 30. 수요일)
시편 44:9-12.
찬송 41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건강이 회복되자 신동엽은 서울의 가족 곁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명성여고 야간부 국어교사가 되지요. 국어교사가 될 수 있었던 건, 단지 그가 명성여고에 가서 그동안 정리해둔 자신의 시들을 보여준 것뿐이었습니다. 작품만으로 교사 일을 얻을 수 있었던, 한편으론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시대였던 거지요. 열심히 시를 쓰면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고 충실히 하던 그는 셋방을 전전하다가, 동선동에 작은 집도 마련합니다. 훗날 맏딸은 그 집에서 참 행복했었다며 이렇게 추억했지요. “이 집에서 막내동생 우섭이 태어났으며, 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어머니는 손수 뜨개질과 바느질로 우리들의 옷을 지어 입히시고, 마당에 화초를 가꾸는 등 집안 구석구석에 알뜰한 더없이 가정주부셨다. 아버지는 낮 동안 글을 쓰시고, 오후에는 국어선생님으로 나가셨다.” 그러면서 그녀는 아이들 중 누가 앓기라도 하면 밤새워 보살피는 건, 어머니 보다 아버지일 정도로, 아버지가 자상하고 따뜻했다고 회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평화롭고 행복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도, 그의 시는 거기에만 머물지 않았지요. 그의 관심과 시선은 언제나 우리나라가 겪어온 그리고 겪고 있는 현실과 역사에 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걸 시로 표현할 때는, 언제나 서정성과 토속적인 면도 잊지 않았지요. 1963년 3월 마침내 그런 시들을 모은 첫 시집 <아사녀>가 나왔습니다. 아사녀, 백제시대의 설화 속 여주인공이지요. 석공 아사달을 사랑하다가 상처받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아사녀를 앞세운 시를 쓴 것만 봐도, 신동엽 시인에게 상처받고 고통 받는 존재들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자연스러웠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 평론가는 평하기도 했습니다. 첫 시집이 나오고 며칠 후 출판 기념회가 열렸습니다. 당시는 시인이었던 극작가 신 봉승 선생이 사회를 맡았지요. 곧 참석한 시인 중한 한 시인이 그의 시 <산에 언덕에>를 낭송했습니다.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 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 지어이”
<KBS FM 1 가정음악 2019. 4. 17. 방송>
2. “사마리아의 함락(9-12절)”과 “앗수르의 왕 산헤립의 유다 침공(13-25절)”을 읽었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이 아닐 경우, 역사의 흥망성쇠를 야훼 하나님과 결부시키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200년 전만 해도 제정일치가 공공연하게 통용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성경의 삶의 자리를 고려하며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앗스르에 의해서 망하게 되었는데, 그에 대해서 열왕기하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모세를 통해 주신 모든 계약을 따르지 않은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앗수르의 왕 산헤립은 유다를 침공하였는데, 몇 요새화된 성읍을 점령하자, 유대왕 히스기야는 항복을 선언하고 은 300달란트, 금 30달란트를 바치게 되었는데, 왕실의 금고에 있는 것은 물론 성전에 보관된 것과 심지어 성전 본관 문짝과 문설주에 입힌 것까지 벗겨주었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이집트와 동맹을 맺어 반격하려는 음모를 알고, 앗수르 왕은 총사령관과 내시장관 등을 예루살렘으로 급파해서, 이집트를 믿고 반역하는 것을 문책하는데, 이집트와 이간선전은 물론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앙마저 폄훼합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야훼의 분부로 오게 되었노라고 비웃기까지 합니다.
전쟁에서 패하게 될 때 패장(敗將)은 유구무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불법과 불합리 그리고 치욕까지 다 감수해야 하는 때문입니다. 이래서 사람들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고 보자, 성공하고 보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일반 인생살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신앙생활에서조차 이런 논리가 판을 친다면 그것은 많이 곤란하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저의 교장선생님이 절친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의절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자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 그게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너무하다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 친구는 학교 내 자신의 사택 문틀까지 다 빼고 헤어진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 미국의 후원자들에게 온갖 악담을 다 늘어놓아, 학교가 재정적으로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때 하셨던 훈화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누구나 이해가 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믿는다 하셨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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