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945(2020. 5. 22. 금요일).

시편 81:8-11.

찬송 53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썼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정신의학 전문용어로 풀이하면,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입니다. 브레히트의 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절절하게 보여주는데요. 전문을 읽어봅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전쟁이나 천재지변, 폭행 사고, 가족이나 지인의 죽음처럼,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 겉으로 보기에 멀쩡할지 몰라도, 인간의 정신은 끊임없이 그 기억을 되새김질 하면서, 몸과 마음에 두려움과 죄책감이라는 상흔을 남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파블로 네루다가 왜 이런 시를 썼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발이 내 손톱이/ 내 머리칼이 내 그림자가/ 꼴 보기 싫을 때가 있다/ 산다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한 편의 시를 쓰더라도, 싱싱한 생선이 눈앞에서 펄떡 거리는 것처럼 썼던 네루다가, 그처럼 스스로를 비루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브레히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고은 시인도 같은 고통을 겪고, 이런 참담한 시를 썼습니다. “미안하다/ 나 같은 것이 살아서/ 5일장 국밥을 사 먹는다독일의 베르톨트 브레히트,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 한국의 고은. 이 세 명의 시인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결코 한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하지도 소중하지도 않은 이유 때문에, 무고한 국민들이 눈앞에서 수없이 목숨을 잃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겁니다. 그 충격은 자책으로 이어지며, 그들의 기나긴 외상 후 스트레스 후유증에 빠트렸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계속 살아서 시를 써야 하는 이유가 됐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후유증을 극복하는 방법은, 상처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피하면 고통스런 상황이 기억에 머물러서, 고장 난 카세트 레코드처럼 무한 반복되지만, 정면으로 바라보면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이겨낼 수 있는 적응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독을 독으로 치유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만큼 고통스럽고 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요. 평생이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통스럽다는 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뜻일 겁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살아야 하는 목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고은 네루다 브레히트에게 시는 그 목적에 닿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예술 또한 결코 삶보다 중요할 수도 소중할 수도 없기에.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457일 방송>

 

2. “한나의 감사 찬양(1-10)”을 읽었습니다. 성경의 대표적인 기도하는 여인인 오늘 주인공 한나는 엘가나의 두 아내 중 하나입니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또 다른 아내인 브닌나로 인해서 상대적인 설움을 당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께 탄원하기로 결심하고, 성전이 있던 실로의 엘리 제사장에게 찾아가서 서원 기도를 합니다. 아들을 낳으면 하나님의 종으로 바치겠다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한나의 찬가(讚歌) 전문입니다. 이 기도를 두고 어떤 성서학자는 마리아의 찬가(1:46-55)와 비교할 만하다 했습니다. 그만큼 한나의 찬가는 시대를 뛰어넘는 용기와 정신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이 한나를 많이 흠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 보았습니다.

   한나의 찬가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임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식 자랑으로 기가 센 여인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부자와 빈자의 자리를 바꾸시고, 하나님과 맞서는 자를 깨트리신다고 말입니다. 마리아 찬가(Magnificat)보다도 최소 1,200년 앞선 한나의 노래는, 가히 그 시대를 뛰어넘는 파격 그 자체다 하겠습니다. 비록 시대적 배경을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남녀의 차별, 빈부의 깊은 계곡과, 권세를 등에 진 자들의 불편부당한 오남용에 대해서 성경은 결코 눈감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고 말입니다. 역사의 물결을 거스리는 것은 엄청난 혼란을 가져올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때가 찰 때까지 어떻게 기다릴 수 있었는지, 그 문드러지는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한나의 찬가는 여러 가지 점에서 마리아의 찬가와 유사성이 많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들이었다는 점은 물론, 역사의 질곡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하나님만이 역사의 주인으로써 반드시 그 높은 뜻을 따라서 역사의 물길을 바로 잡으실 것이라는 점 등을 말입니다. 한나는 기도의 사람일 뿐 아니라 혜안을 가진 역사가였다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3. 어제는 녹음이 우거진 도봉산 둘레길을 산책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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