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033(2020. 8. 18. 화요일).

시편 101:3-5.

찬송 51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큰 딸 봐라네가 보낸 편지 잘 받아 봤다. 저녁 외출 전이면 꼭꼭 다 마른 빨래를 거둬놨다는 그 화가 말이야. 안 사람만 집에 두고 혼자 저녁 먹고 술도 마실 생각을 하니까 좀 미안해서 그랬던 것 아닐까? 미안한 마음에 주섬주섬 빨래라도 들여나 주고 가자. 이 아버지는 그 사람이 꼭 그랬을 것만 같구나. 아버지도 그랬어. 너희들에게 크게 잘 해 준 것이 없어서, 마음으로 항상 좀 미안했지. 그런데도 단지 몇 번 아침밥 차려 준 것만 기억해 주다니. 고마울 따름이야. 요즘이야 세상이 달라져서 이젠 텔레비전에서도 남자들이 앞치마 입고 설거지를 도와주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마는, 우리 시대에는 달랐던 것 같다. 그 화가가 빨래를 거둬서 개켜놓는 것도 남 눈치 보이는 일 중의 하나였겠지. 그런 모습이 더 이상스럽게 보여서 오늘날까지도 이야기되는 건 아닐까 싶어. 남들 보는 앞에서 남자가 빨래를 걷거나 부엌에 들어가면 큰일이 난다는 시대였으니까. 이제와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해보지도 못하고 사는 일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를 알겠더구나. 그냥 하고 싶은 데로 남 눈치 안보고 살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곤 하지. 퇴직한 덕분에 예전에 읽었던 가물가물한 옛 시들을 다시 뒤적여 보는데, 이백의 그 유명한 <산중문답/山中問答>이 보이더구나. “나더러 무슨 일로 푸른 산에 사냐 길래/ 웃으며 답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한가롭네/ 복사꽃이 흐르는 물에 아득히 떠내려가니/ 인간 세상이 아니라 별천지로다이 아버지 생각엔 늙어가는 일은 속세에 살아도 산중에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세상일에서 한발 멀어져서 보니까 마음이 한가로운 것도 그렇고, 책도 읽고 나무도 돌보다 보면, 아직도 하루가 좀 짧다고 느껴지기도 해. 그러니 퇴직하고 적막할까봐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럼 건강하게 잘 지내려무나<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429일 방송> b.

 

2. “문안(17-27)”을 읽었습니다. 어제와 같은 표제어를 갖는 말씀입니다. 사도가 로마교회를 아직 방문하기도 전인데도 불구하고 로마교회 안에 이렇게나 많은 지인들과 교제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어떤 인생이든 사람들과 어울려 살게 마련이라면, 여러 가지 형태의 인연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면 결코 가볍게 말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지 모릅니다. 즐겁고 유쾌한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떤 때는 두 번 다시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랄 때가 생길만큼 몹시 서운하고 화가 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무게만큼 중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전생의 웬수가 되었다고 말하게 되는 그런 시간도 오더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라고 어찌 그런 인연들이 없었을까요? 그러나 사도는 마음을 확정한 것인지 모릅니다. 모든 어둡고 아픈 뒷모습은 다 지나간 것들이니 지나간대로 그냥 두자고 말입니다. 아픈 생채기를 들추는 것은 피하는 게 상책(上策)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익명이긴 합니다만, 여전히 신앙 공동체를 해치는 인물들의 사례를 지적하고 있는 점이 특이합니다. 가령 기독교회의 진리와는 달리 분열을 조장하고, 멀쩡한 사람들을 죄짓게 하는 사람들을 먼저 거론합니다. 그들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이 아니라, 자신들의 뱃속을 채우는 자들이라고 말입니다. 참으로 나쁜 사람들입니다. 순진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데, 그 결과를 보면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분쟁의 한 복판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경우를 보게 될 때 더 이상 말문이 막히고 맙니다. 이해관계가 아니라면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반대라면 아무리 “By Law!”를 외친다 해도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사도는 선한 일에 현명하고 악한 일에 물들지 않기를 바란다.”는 충고를 해야 했던 것입니다. 끝으로 사도는 많은 성도들의 이름을 소개하며 로마 교우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대목이 나옵니다. 물론 로마 교회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이름들입니다. 사도와 동역하는 사람들, 그리고 편지를 대필하는 사람들, 그리고 재정을 신경 써 주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서로가 이름은 물론 얼굴도 전혀 생소한 사람들일지라도, 그런 사람들이 우리시대에도 중요한 길목에서 하나님의 일에 동역하고 동참하는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기쁨이고 감격일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도 그렇습니다. 그것들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