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151(2020. 12. 14. 월요일).

시편 시 119:45-48.

찬송 37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김 효정 담당자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주 목요일 효정 씨가 신제품을 소개하기 위해서 들렸던 회사의 담당자 가운데 한 명인 이정우이라는 사람입니다. 제가 회사에서 맡은 일이 물품 구입과 관리라서, 효정 씨처럼 신제품을 들고 와서 그 기능을 설명하는 자리를 자주 갖는 편이지요. 대체로 소개를 하는 사람이나 소개를 받는 저희들이나 타성에 젖기 쉬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효정 씨의 제품 소개 방법은 조금 다르더군요. 적절하게 질문을 유도하면서 또 그런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어느 새 그 제품의 모든 것을 재치 있게 설명하시더군요. 지루하지 않게 접근하는 방법을 미리 충분히 연구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실용성이나 경제적인 비용 절감 부문을 강조한 마무리는 참으로 시의 적절했지요. 그런 느낌을 저 혼자만 느낀 게 아니더군요.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호평을 하더라고요. 아마 기회가 닿으면 꼭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럴 때 보면, 인생이 어느 정도는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지요. 노력한 사람과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그렇게 구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여기까지 읽으시면서, 조금 궁금하시겠지요? 이 편지의 정체는 무엇일까? 공적인 편지일까? 사적인 편지일까? 고개를 갸웃 거리실 것도 같습니다. 모든 편지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마지막에 또는 ps. 추신에 담겨있다고 하지요. 저도 이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회사일도 만난 사람 중에, 처음으로 누군가를 한 번 더 만나고 싶고, 또 그 사람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다고 느낀 것은 효정 씨가 처음이었습니다. 서투르게나마 이런 제 마음, 담아 보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1211일 방송> a.

 

2. “인사(1-2)”하나님의 부르심(3-11)”을 읽었습니다. 베드로 후서의 발신자가 베드로임에 반해서 수신자는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특정 수신인이 없다는 점에서 공동서신으로 분류합니다. 그러나 베드로 후서는 유다서와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는 이유를 들어서 두 서신 사이에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의존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 두 문서의 공통점은 거짓 교사들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하고 있는 점입니다. 그리스도를 부인할 뿐 아니라, 방탕한 생활을 하는 점이나 선한 천사들의 힘을 경시 내지는 무시한다는 점 그리고 타락한 천사, 노아 홍수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의 순서로 제시되는 점 등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베드로의 이름을 빌린 서신으로 초대 교회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는 문서 중의 하나로 간주하는 경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서신이 채택된 것은 초대교회를 흔들고 있는 문제를 잘 대처한 점이 성경의 맥락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을 것입니다.

    베드로 후서의 기자는 초대교회를 흔들고 있었던 거짓 교사들로부터 성도들을 지켜려는 강한 의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서 우리를 불러내신 하나님을 향해 눈을 돌리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의 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권고를 합니다. 그것은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며,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며, 경건에 교우간의 사랑을 더하고, 교우들 간의 사랑에서 만민에 대한 사랑을 더하라고 권합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믿음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그 믿음에 힘을 주는 구체적인 행동강령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런 시도는 자칫 인간 중심이며 율법주의를 내세울 수 있으나, 기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뽑으시고 부르셨다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신앙과 생활의 조화를 고민하면서 항상 극복하지 못하는 문제, 신앙과 율법 곧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공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에게 귀한 권고가 아닐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겨라 그러나 동시에 네 본분을 다하라.”는 이중적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를 부르시고 감당할 능력을 주신다.”는 말씀으로 답을 얻으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우리들 인간은 인간의 일을 하는 것으로 좌절감을 느낄 때,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넘어지고 패하면서도 일어날 희망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3. 주님의 평화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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