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338호(2021. 6. 19. 토요일).
시편 시 11:1-4.
찬송 7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다 보니 야프 섬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야프 섬의 한 사람이 이웃 섬에서 아주 커다란 돌 화폐인 원석을 배로 실어오고 있었습니다. 크기만큼이나 아주 값비싼 화폐가 될 원석이었지요. 그런데 야프 섬에 도착하기 전 풍랑을 만나서 그만 그 원석을 바다에 빠트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그는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도 그 사람은 야프 섬에서 큰 부자가 됐다고 합니다. 바다에 빠지기는 했지만, 원석은 어쨌든 바다 밑에 있을 게 틀림없지요. 그들 특유의 화폐 거래법으로, 원석주인은 그저 바다를 가리키기만 하면 됐습니다. 그러면 주민들은 또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원석의 일부를 자기 것으로 생각하기만 하면 됐습니다. 그렇게 그 돌은 화폐제도가 바뀔 때까지, 보이지 않는 바다 밑에서 자그마치 2대에 걸쳐, 큰 화폐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거짓이나 속임수가 없이 다 같이 순수했으니, 그런 화폐법이 가능했겠지요. 살아가면서 제일 힘들고 제일 말썽인 게, 사실 뭔가를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망이 아니겠는지요. 하늘의 구름처럼 내게만 머물지 않아도 어디엔가 있으면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야프 원주민의 돌 화폐 법으로 돌아가는 게, 어쩌면 발전하는 인간 문명 최고의 목표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도 됩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6월 20일 방송>b.
2. “계약을 길이 지키기로 다짐하다(2-13절)”을 읽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맺은 계약은 비록 하나님 편에서 제정한 일방적이긴 하지만 쌍방이 동의를 한 이상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런 약속과 그 실천은 신뢰할 수 있는 사회로 빛을 더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약속은 생명을 풍성하게도 절망하게도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40년의 광야생활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신뢰할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었습니다(2-6절).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40이라는 숫자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완전하다는 4와 그것을 열 번 되풀이 했다는 의미, 그리고 겪을 수 있는 시련을 다 경험했다는 의미 등입니다. 40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 시간동안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어떻게 돌보고 지키시는지를 똑똑히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용할 양식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신 일,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일, 목이 타고 외세의 침략 등 위기가 올 때마다 적절하게 해결해 주신 일, 그리고 자신들을 위대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신앙적으로 정신적으로 무장시켜 주신 일 등은 먼 미래를 희망적으로 내다볼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시련 속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광야 생활 40년은 하나님만이 형통하고 안전한 삶을 살게 하시는 분임을 생생한 경험을 통해서 배우게 했습니다(7-13절). 40년 광야 생활은 감당하기 힘든 시련과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그것은 그 민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어떻게 지켜주셨는지를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괴로운 시간이지만, 되돌아보면 은총의 시간이 된 것입니다. 앞으로 오고 올 길고 긴 민족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광야 생활 40년은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신앙을 확립하는 시간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을 똑똑하게 체험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우리 현대인들에게 신앙은 매우 어리석을 수 있고, 또 위험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증명되는 것도 증명할 수도 없는 불가사의한 신기루와 같은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경험했던 광야 생활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고 돌보신 역사적 사실들을 기억함으로 간접으로나마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이렇듯 하나님의 약속과 그 성취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데서 시작하고 끝나는 것임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3. 어제는 뉴욕대학의 철학교수인 토마스 나겔의 책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를 들고 용문행 전철을 탔습니다. 역시 철학은 인간의 원초적인 질문을 던질 뿐, 해답은 제시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깨우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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