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379(2021. 7. 30. 금요일).

시편 시 20:7-9.

찬송 26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머니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었다. 어머니 하면 떠오르는 단어 하나를 고르라 한다면, 열의(熱意)를 들겠다. 뭐든지 경험하고 맛보고 어디든 가보고 싶어 했다. 어머니의 관심사의 폭이 어찌나 넓은지, 적어도 나는 헤아리기 어려웠고 따라갈 수 없었다.” <중국여행 프로젝트> 라는 단편에, 어머니는 이렇게 썼다. 스무해 전부터 죽기 전에 꼭 하겠다고 다짐해 온 일, 마테오른 등정, 합시코드 연주법 배우기 중국어 공부. 아들로 하여금 이렇게 어머니를 회상케 한 이는 바로 미국의 소설가이자 탁원한 에세이스트였던 수잔 손택입니다. 수잔 손택은 문학적인 글만 쓴 여성작가가 아니었지요. 베트남 전쟁이나 9.11테러에 대한 정치비평 글과 행동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녀에게 붙여진 별명도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에서부터, 뉴욕 지성계의 여왕,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등, 다양했지요. 그럼에도 그녀의 관심사는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더 크고 왕성해졌습니다. 그동안의 글과 활동만으로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살아가는 인물이었지요. 그런데도 50대가 넘어선 나이에 오히려 거기에다 마테 오른 등정에 합시코드 중국어라는 결코 쉽지 않을 도전과제를 세 가지나 더 추가했습니다. 그러니 그녀가 뉴욕 타임스와의 다음처럼 말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지요. “나는 여러 가지일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데 관심이 있다. 내 모든 작품이 말하는 것은, 진지 하라 열렬 하라 깨어나라 는 것이다.” 또한 수잔 손택이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조하는 것도 대중문학의 퍼스트레이디로써는 당연해 보입니다. “우리는 써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많이 안다.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한번 보라. 로켓, 베니스식 교회, 헴버거, 선글라스.” 그 말은 곧 자신의 머리에도 우리들의 머리에도, 어딘가에 무엇인가에 활용 할 수 있는 것들이, 우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신 더 많다는 뜻이겠지요.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82일 방송>a.

 

2. “다윗이 놉의 제관 아히멜렉의 도움을 받다(1-10)”다윗이 망명생활을 시작하다(11-15)”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사울이 통치하던 시절에 성막은 예루살렘 북쪽 베냐민의 지역에 위치한 놉에 있었는데, 다윗 시대에 예루살렘으로 옮기기 까지는 여러 곳(길갈, 수로, , 기브온 등)을 전전(轉傳)하였습니다. 마침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은 시대를 바르게 읽고 있던 인물로 보이는데, 다윗의 여러 날 굶은 얘기를 전해 듣고 적극적으로 돕고 싶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성소에 막 물려낸 거룩한 떡(진설병)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제사장들도 거룩한 장소에서만 먹을 수 있는 떡을, 부정(不貞)한 경우가 아니라면 내놓을 뜻을 밝혀서 진설병을 얻어먹은 일화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소에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진설병 12개를 일 년 내내 성소에 진설하는 전통이 있는데(24:5-9), 이는 이스라엘 12지파가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화목제물로, 매 안식일 직전에 떡을 교체하곤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떡을 구걸하러 놉에 들렸을 때는 떡을 막 물린 뒤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훗날 안식일 논쟁에서 예수님께서 인용하셨던 다윗이 제사장들만 먹도록 되어 있는 진설병을 시장한 군인들과 함께 안식일에 먹은 일화로 사용하였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법과 원칙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윗의 일화를 통해서 우리가 다시금 깊이 묵상할 주제는, 법과 원칙이란 문자적 의미를 말하는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과 원칙이란 법과 원칙의 정신 혹은 목적을 살려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가령 진설병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면서 동시에 역할을 마친 진설병은 원칙적으로 제사장들만 순전한 몸과 마음으로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배가 고파 허기진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때, 그 진설병의 의미를 바르게 알려주고 최소한 며칠 간 만이라도 부정한 일이 없다는 전제로 먹일 수 있다는 것은, 법과 원칙에 대한 바른 해석이라고 하겠습니다. 만일 제사장 아히멜렉이 문자적 해석을 내세우면서 진설병을 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면, 허기진 다윗과 그의 군사들은 폭력을 행사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예상됩니다. 그러나 아히멜렉은 훗날 자신과 제사장들이 겪게 된 엄청난 수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보답하는 바른 해석을 따랐다고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신과 목적에 충실한 삶은 훗날 역사에도 충실할 테니까요.

 

3. 어제는 아내와 함께 도봉산 둘레길 산책에 나섰는데, 늙은이를 위한 나무 그늘이 너무 좋았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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