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377호(2021. 7. 28. 수요일).
시편 시 20:1-3.
찬송 31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눈보라>에는, 제목 그대로 사나운 눈보라가 등장합니다. 그냥 눈보라도 아니고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눈보라고 시간도 저녁 무렵입니다. 마차에 앉은 마부도 일하는 모습이 영 미덥지가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행 중이던 주인공은 다시 마차에 오릅니다. “저녁 6시경이었다. 차를 마시고 나서, 나는 역을 떠났다. 털외투와 담요를 덮어 쓰고, 알로샤와 나란히 썰매마차 위에 앉았을 때는, 이미 상당히 어두워져 있었다. 마을을 벗어나 검은 윤곽을 들어낸 여러 개의 풍차중 하나가 기웃둥 거리며 큰 날개를 흔들고 있는 곳을 지나자 길은 한층 더 험해졌고, 눈이 두텁게 쌓여 있었다. 바람이 왼편에서 거세게 불어와 말꼬리와 갈기를 옆으로 흩날리며, 말발굽이 일으키는 눈을 세차게 휘몰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의 머릿속엔 밤새도록 길을 잃고 헤매다 도중에 얼어 죽지 않으려면 오늘 밤엔 아예 떠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던 역 관리인의 말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달린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마부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눈길에서 길을 잃고 맙니다. 그런들 돌아가는 길도 알 수가 없으니, 눈보라를 뚫고 그냥 무작정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갑니다. “바람이 한층 더 심해졌고 몸이 조금씩 얼어붙기 시작했다. 코와 두 뺨에 한층 더 날카로운 한기가 느껴졌다. 썰매차가 가끔 얼어붙은 눈덩이에 부딪혔다. 우리의 방황이 어떻게 끝날까 궁금해 오랜 시간 쉼 없이 여행한 탓에 눈이 저절로 감기고 잠이 오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마차는 옆을 지나가는 다른 마차 일행을 만나기도 하지요. 그래서 안심을 하지만 그것도 잠시입니다. 마차와 마차 자국은 금세 다 눈 속으로 사라져, 그들만 뒤쫓아 가려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래도 무조건 눈보라를 뚫고 어디론가 달리다가, 누군가가 깨진 얼음 웅덩이에 빠진 사고도 목격하게 됩니다. 거대한 눈보라를 헤치고 목적지 역까지 갈수 있는 가능성은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7월 31일 방송>a.
2. “요나단의 우정(1-23절)”을 읽었습니다.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 그리고 미움을 받는다는 느낌은 그 당사자보다 더 정확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느낌을 보다 더 정확한 확인을 위해서 고백을 요구합니다. “말해 봐!”가 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그런 대화가 나옵니다. 사울을 대상인물로 두고, “나를 죽이려 하신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는 식의 갑론을박이 오가기도 한 것입니다. 자신의 부모나 형제자매인 혈육을 비난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무조건 믿고 보자는 식이지만, 정황들에 대해 미확인 부분들이 걷히고 진실이 들어나면, 서로가 동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작업이란 친구들 사이에서 벌이기가 매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생사를 염려할 처지에 놓이게 되면, 그리고 그 우정이 순수하고 도타운 것이라면 가능하다는 것을 다윗과 요나단을 통해서 시연해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요나단이 먼저 제안을 합니다. “어찌하면 좋을지 자네의 의견을 말해보게.” 그러자 다윗은 생각해 둔 계략을 말합니다. 매달 초하루는 다윗이 임금님의 정찬에 출석해야 하는 날인데, 3일 저녁까지 들에 숨어 있도록 부탁합니다. 그래서 왕 사울이 자신을 찾거든 다윗 집안의 문중에 일이 있어 베들레헴에 다녀오도록 휴가를 주었다고 말씀을 드리게 하는데, 만일 왕이 긍정하시면 무사하겠지만, 화를 내시면 자신을 헤칠 결심을 한 것으로 알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두 경우를 들에 숨어 있는 자신에게 알려주어, 왕궁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피하든지 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의 우정에 대해서 확신을 나눕니다. 특히 요나단은 야훼 하나님 앞에서 맹세를 하고, 만의 하나 다윗에게 위험한 일이 닥치는데도 이를 알리지 않아 도망치지 못하게 한다면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집안에 대한 다윗의 의리도 끊지 않도록 부탁을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에셀 바위 옆에 숨게 하고, 자신이 활을 세 번 쏠 터인데, 시종을 시켜 화살을 집어오게 하면서, “화살이 이쪽에 있다. 집어오너라.” 고 하거나 “화살이 저쪽에 있다. 집어 오너라.”고 말할 텐데, 이쪽에 있다고 말을 하면 아무 일이 없다는 신호이고, 화살이 저쪽에 있다 하면 떠나가라는 신호로 정합니다. 이쪽과 저쪽, 방향을 말하는 지시 대명사이지만, 그 의미와 목적은 생사로 갈리는 말이었습니다. 이쪽은 사는 길이고, 저쪽은 죽는 길을 가리키는 때문입니다. 이쪽은 평안의 길이고, 저쪽은 시련과 고난의 길인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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