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504(2021. 12. 2. 목요일).

시편 시 43:1-3.

찬송 5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감정에는 음표와 같은 순간성이 있다.” 매일 보는 사람인데 그날따라 하는 말마다 듣기 싫고, 하는 행동마다 다 보기 싫은 날이 있습니다. 이럴 때면 우리 관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어지지요. 그런가하면 기분이 우울하고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습니다. 이럴 때면 내가 잘못 산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물론 관계에 문제가 있어서 상대가 보기 싫을 수 있고, 잘못 살아서 우울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상대가 보기 싫다고 지금 기분이 우울하다고, 관계에 문제가 있다거나, 그동안 잘못 살았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는 건 섣부른 판단입니다. 왜냐하면 그건 그저 감정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그 감정이란 미국의 정신 의학자 토머스 루이스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감정에는 음표와 같은 순간성이 있다.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치면 망치가 그 건반에 해당한 현을 때려 고유의 주파수로 진동시킨다. 진동의 폭이 수가 감소하면, 그 소리는 점차로 약해지다가 결국에는 완전히 사라진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음표처럼 순간적인 것이며, 언젠가는 사라질 거라 믿으면,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 마음먹어지지 않을 때가 있지요. 토마스 루이스에 따르면, 그 이유는 이렇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유지되는 감정은 기억의 연속적인 환기에 의해, 즉 짤막한 감정이 반복적으로 소리를 울림으로써 발생시킨다.” 자꾸 그 일을 떠올리고 또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게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예를 들어서 미래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이라고 해도, 우리 뇌는 상상과 실제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정이 계속 유지 됩니다. 괜히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건, 내 마음속에 있는 피아노가 건반 하나를 누른 겁니다. 손을 떼면 음은 울리다가 사라질 겁니다. 사라질 때까지 그냥 내버려두면 됩니다. 빨리 없애려고 무리할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음이 사라지지 않고 며칠 째 계속 울리고 있다면, 그건 계속 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보름 이상 지속된다면,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경우에는 곧 사라지기 마련이며, 그럼으로 지금 당장의 기분이나 감정이라는 걸 그처럼 단순하게 여길 필요도 있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41217일 방송>

 

2. “이스라엘의 위선과 고집(4-12)”을 읽었습니다. 첫 인상이란 것이 얼마나 강렬한지 모릅니다. 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도 30분이나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텔아비브에서 택시 쉐룻(sherut)을 타고 예루살렘을 두 바퀴 돈 후 결국 사서함 번호의 예약된 숙소를 찾지 못하고, 자파게이트에서 저를 내려주었습니다. 분명 이 근처일 것이니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후에 만난 이스라엘 경찰관 두 사람, 그들에게 주소를 물어보자 저를 아래위로 쳐다보더니 손가락을 이리저리 가리키며 히브리말로 몇 마디하고는 돌아서 가는 것입니다. 그 알쏭달쏭한 손가락질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마침내 성 마가 교회당 앞에 있는 Lutheran Guest House를 찾아냈습니다. 그 때 저의 뇌리에 박힌 이스라엘 사람은 차가운 얼음덩어리였습니다. 벌써 42년 전의 일이지만 또렷이 떠오르는 그림입니다. 온 세상을 위한 축복의 근원이 되라고 세워주신 선민 히브리민족은 고달픈 삶을 살면서 전혀 딴 사람들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첫 번째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억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엉뚱하게도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 막아서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모스는 야훼 하나님의 말씀임을 밝히며 무서운 저주를 퍼붓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성전이 있는 베델과 길갈이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리고 십일조를 드리며 감사예물을 바치는 거룩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그게 죄짓는 일이라고 호통을 치십니다. 양식이 떨어진 성읍을 뻔히 알고 계시면서도 굶주리게 하시고, 추수를 석 달 앞둔 밭에 비를 내리지 않아 말라 죽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포도원과 무화과 감람나무는 메뚜기가 갉아 먹고, 이집트에 내린 염병을 이스라엘에도 내리시고, 소돔과 고모라를 뒤 엎어버리듯 그들을 부지깽이처럼 만들겠다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분명 때마다 성전을 찾아가서 희생제사와 십일조 그리고 감사예물을 드렸는데,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니요. 저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다. 찬송 소리는 우렁차고, 기도소리는 요란한데도, 거기서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하나님 없는 예배가 얼마나 많은지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저희들끼리 어울려서 소리치고 흔들고 광란에 가까운 짓들을 하는 모습 말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예배는 영적으로 참되게 드리는”(4:24) 예배였고,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6:8)이었습니다.

 

3. 묵상식구 김동환목사님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전도 피켓을 목에 걸고 길거리에 서서 하나님의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십니다. 혹시 피켓을 원하시는 분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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