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515호(2021. 12. 13. 월요일).
시편 시 45:1-3.
찬송 43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더러 쓰는 말 중에 “헛 똑똑이”라는 말이 있지요. 아는 것도 많고 매사에 분명하고, 그래서 무슨 일에든 자기 앞 가림 야무지게 잘 할 것 같은데, 정작 정말 중요한 일이나 사랑 문제 같은 데선, 어떻게 저런 선택을 하나 할까 싶도록 답답한 사람한테, 흔히 쓰는 말이 헛 똑똑이란 단어입니다. 그런데 사실 심리학에서는 똑똑하고 아는 것 많은 사람보다, 아는 게 더 적은 사람이 더 똑똑할 수밖에 없다는 실험결과가 있습니다. 가령 심리학자가 미국과 독일인 실험 참가자들에게 샌 디에고와 샌안토니오 중에서, 과연 어느 도시의 인구가 더 많을지를 물어봅니다. 정담은 샌디에고쪽이지요. 미국인 참가자들은 삼분지 2 쯤이 정답을 제대로 말했습니다. 독일인들은 미국인들 보다는 아무래도 미국에 대해 덜 알겠지요. 그러니 정답의 비율도 낮을 듯 했는데요. 뜻밖에도 독일인의 정답 비율이 미국인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적게 아는 사람이 더 많이 안다는 역설적인 심리효과. 이 역설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나라이니 샌디에고와 샌안토니오 두 도시에 대해 정보를 알고 있을 확률이 더 보다 높지요. 그러다보니 인구에 대한 비교에 다른 정보들이 적당이 끼어들어서 혼란을 주기도 합니다. 오답의 확률이 높아지는 거지요. 반면 독일인들은 두 도시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거나 있어도 미국인들만큼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실제 정보보다는 막연한 추측들로 답을 고릅니다. 그런데 그런 선택이 낼 수 있는 정답 확률이, 많은 정보 속에서 얻는 정답 확률보다 훨씬 높다는 거지요. 아는 게 병이라는 우리 속담 떠오르시지요. 실제로 똑똑하다는 사람일수록 일을 하기도 전에 혹은 하면서도, 자신의 판단이나 정보를 지나치게 많이 적용합니다. 그러다보면 불가능에 대한 생각도 많아지지요. 결국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거나, 중간에 접어 버리기도 합니다. 반면 스스로 평범하거나 아는 게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것저것 재지 않고 성실히 일을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똑똑하다고 믿는 사람보다, 최종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지요. 그걸 심리학에서는 적게 아는 사람이 더 많이 안다. 적은 것이 많은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사실 매사에 자신을 너무 과신하거나 들어내지 않는 겸손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심리학이 아니어도 늘 보고 깨닫는 것 중의 하나이지요. 헛 똑똑 보다는 바보 겸손을 마음에 간직하고 싶어지네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0년 12월 9일 방송>
2. “첫째 환상(7-17절)”을 읽었습니다. 스가랴는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난 열 한 번째 소선지자로, 그는 동시에 제사장이기도 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스룹바벨의 지휘아래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지도자 중 한 사람입니다. 학개와 같은 시대의 인물이었으며, 성경에 등장하는 28명의 동명이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 역시 환상을 보았습니다. 흔히 환상을 영어로는 vision을 뜻하는 말로 이해하는데, 꿈이라는 단어 dream과는 다른 차원의 용어입니다. 꿈을 정적인 바램으로, 비전을 동적인 바램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꿈이란 한 개체가 마음에 품고 있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욕심 없는 간절한 바램을 말합니다. 그러나 vision이란 말은 야망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바램을 너머서는 공동체나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보다 원대한 바램을 의미하는 뜻으로 말입니다. 본문은 다리우스 2년(주전 520년) 11월에 선지자 스가랴가 본 환상으로 세상을 두루 순찰하고 돌아와 야훼 하나님께 보고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붉은 말을 탄 기마대를 비롯, 잿빛 말을 탄 기마대와 흰 말을 탄 기마대였는데, 그들의 보고는 “사람들이 평안히 살고 있습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옆에서 그 말을 듣던 천사가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내버려 두시렵니까?” 하고 묻자, 야훼께서 좋은 말로 위로하셨으며, 천사가 이렇게 외치라고 명을 내립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생각만 해도 속이 타는 구나. 시온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타는구나. 내가 크게 화를 내지 않았는데도 그토록 지나치게 행패를 부렸구나. 내가 선언한다. 내가 다시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기리라. 내 집을 다시 세우게 하리라.” 만군의 야훼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엿보게 하는 흥미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벌을 내리시는데, 바벨론이나 앗시리아와 같은 이방민족을 일꾼으로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의하면 그 일꾼으로 부름 받은 바벨론이 “지나치게 행패를 부려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심하게 다루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채찍을 휘둘렀어야 하는데, 분수를 넘어섰다는 말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직권남용을 했다는 뜻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세상을 섭리하시되 자연과 각종 나라와 인종들을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말입니다. 주의할 것은 도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용하신다는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묵상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자리를 찾는 것 : 죄로부터의 해방. / 슥 3:1-10. (0) | 2021.12.15 |
---|---|
예루살렘과 우리를 지키시는 이는 야훼 하나님. / 슥 2:1-13. (0) | 2021.12.14 |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자. / 학 2:1-9. (0) | 2021.12.11 |
예배당을 지어야 할 당위성. / 학 1:1-15. (0) | 2021.12.10 |
바른 선민의식 : 세상을 변화시키는 축복의 통로. / 암 9:1-10. (0) | 2021.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