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534호(2022. 1. 1. 토요일).
시편 시 49:13-15.
찬송 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손 전화, 휴대 전화가 나오기 전 에는요, 새해가 시작될 때, 새해 수첩에 전화번호 옮겨 적는 일도 큰 할 일이었지요. 휴대전화 쓰면서 부터는 그 일도 더는 하지 않게 됐는데요. 휴대전화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이름이 몇 몇쯤 되세요? 사실 휴대전화 전화부에 경우엔 만남이 전혀 없어지거나 불필요해진 이름이라도 굳이 찾아서 지우진 않게 되지요. 그러다보니 저장된 이름과 번호가 계속 늘어나서, 쉽게 몇 백 개를 넘어가기도 합니다. 하는 일에 따라서는 천 개를 다 채웠다는 분도 계시고요. 심리 언어학자인 로빈 던 반은 사람의 언어가 위험을 알리거나 동물 차원의 신호에서 생긴 게 아니라, 원숭이나 침팬지 같은 영장류의 털 고르기에서 발전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같은 원숭이들끼리 한가하게 털을 골라주고 청소해 주면서 주고받던 소리와 신호들이 인간의 언어로 진화했다는 건데요. 좀 더 쉽게 비유하자면, 서로 어울려 놀면서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고 신호를 나누다가 언어를 갖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던 반은 털 고르기 언어를 나눌 수 있는 상대, 즉 잡담을 나눌 수 있는 숫자를 진화 이전의 고릴라들은 약 70마리, 진화 이후의 인간은 약 150명 정도라고 규정 했어요.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잡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를 150여명 정도 가질 수 있다. 누구나 150여명 정도와 잡담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인데요. 친구가 많은 게 무조건 능사는 아니겠지만, 올 한해 휴대전화 전화번호부의 관계 분류 항목 중에서, 친구에 해당되는 이름들을 좀 많이 얻었으면 좋겠다. 새해에 한번쯤 가져볼 만한 바람 아닐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0년 1월 4일 방송>
2.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18-25절)”을 읽었습니다. 몇 년 전에 우리 기독교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도마복음서>가 한 신학자에 의해서 소개되었습니다. 도마복음서의 특징은 성경에 많이 언급되고 있는 기적이나, 고난과 십자가, 종말, 부활, 재림, 최후 심판 등에 대한 언급이 없고, 대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나 깨달음을 통해 새사람이 된다는 등의 강조를 들 수 있습니다. 마침 어제 이곳 아산 교회 지도자 모임에서 한 평신도 지도자는(아산 1-2대 민선시장) 기독교회의 무력함에 대해서 회의를 가질 때가 있다며,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류의 터전인 지구란 태양계의 아주 작은 행성에 불과, 머지않아 화성은 물론 목성과 토성 등 엄청난 행성에 인류가 살아갈 터전을 만들지 모르는데, 여전히 이런저런 작은 문제들에 얽매여 좀 더 크게 눈을 뜨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며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저의 대답은 좋은 질문이라고 전제한 후, 예수님이 받으셨던 첫 질문이 돌로 떡을 만드는 것이었고, 세례자 요한의 첫 설교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소개하면서, 성경은 인류가 죄와 죽음에 직면하고 있는 한, 한 발자국도 희망의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 말했습니다. 인류가 직면한 죄의 근원은 탐욕으로 아담과 하와가 그 덫에 걸린 사람들로, 이는 결코 작고 시시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같이 되어 보려는 것에 이르고 있음을 성경을 말씀하고 있어서, 회개하라(방향을 바꾸라)고 설교했노라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태양계에 진출하기 전에 그 탐욕으로 인류는 반드시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탄생의 경위를 말씀하고 있는데, 요셉과 마리아는 서로 정혼한 사이로, 요한에게 성령께서 임재 하셔서 마리아가 잉태한 것을 알려주십니다. 황당한 일이라 생각한 요셉은 조용히 파혼을 결심하는데, 천사는 두려워 말고 마리아를 맞으라고 말립니다. 그녀의 태중에 성령으로 잉태한 남아가 있는데,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덧붙입니다. 예수란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오래전 이사야가 예언한(사 7:14) 일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사야가 예언했던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의 뜻도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고, 아들을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않았다는 게 성경 기자는 말입니다. 일종의 태몽 같은 일화라고 할 수 있지만, 현실이 된 것입니다. 이런 신비한 일화는 정혼한 요셉과 마리아는 물론 그들의 집안 친척이나 주위 사람들에게는 결코 시시한 일일 수 없었을 것이며, 하나님의 계시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본문에서 주목할 것은, 모든 생명은 성령께서 간섭하신다는 진리입니다. 요즘은 과학적으로 생명의 신비를 풀어가는 듯도 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우리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생명 자체의 생성과 성장은 여전히 하나님께만 있는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복제나 생명 경시를 금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3. 우리 주님의 은혜로 복된 새해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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