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550호(2022. 1. 17. 월요일).
시편 시 52:1-3.
찬송 20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불탈불염(不奪不饜), 아니 불(不), 빼앗을 탈(奪), 실컷 먹어치울 염(饜). 빼앗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한다. 맹자의 말씀이다.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아 내 것으로 하겠다. 이런 심술이 곧 탈(奪)이다. 그런 심술은 아무리 먹어 치워도 물릴 줄 모른다. 그래서 좀도둑이 소도둑이 된다. 무서운 것을 무서워할 줄 모르는 것이 가장 무섭다. 그렇게 되면 화약을 지고 불길로 뛰어들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불속에 들어간 화약은 터지게 마련이다. 마음속에 감추어진 화약덩어리 같은 것을 이(利)라고 한다. 그 화약덩어리에 불을 당기려는 것을 욕(慾)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욕(利慾)이 만나면 터지고 만다. 이욕(利慾)은 반드시 탈을 낸다. 도둑질을 하려다 안 되면 강탈하려고 덤빈다. 남을 등치고 후려내 제 뱃속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이(利)를 밝히면 세상은 썩게 마련이다. 그래서 위아래가 서로 이득만을 취하려고 하면 세상을 어지럽게 된다.
이를 물리치는 힘을 의(義)라고 한다. 의란 무엇인가? 마음을 절제하며 일을 마땅하게 하는 것을 일러 의(義)라고 한다. 욕심을 절제하면 의(義)로 통하고, 욕심을 부풀리면 이(利)로 통한다. 나만 이롭고 너는 해롭다는 경우가 바로 불의(不義)이다. 불의를 딛고 독버섯처럼 피어나는 이(利)를 잡아야 편하게 산다.” 윤재근, <<내 마음속 조용히 살아리랏다>, p. 86.
2. “니고데모와의 대화(1-15절)”을 읽었습니다. 니고데모라는 인물은 유대인의 공의회 회원으로 성경에 3번 등장하는데(요 3:1-21, 7:51, 19:38-42), 모두 다 매우 중요한 장면이라는 점입니다. 소위 거듭남의 진리에 대해서, 예수님을 정죄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한 일에서,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옮기는 일에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으로, 세상 모두가 주님께 등을 지고 비판을 넘어 죽이려고 하는 판국에, 주님을 옹호하고 지지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니고데모는 연구할 만한 대상이 되고도 남는다 하겠습니다. 본문은 거듭남의 진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결론은 당대의 학식과 덕망이 있었던 니고데모 역시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살피는 것은 후대의 우리에게 큰 자취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니고데모는 진리에 목마른 사람임에 분명했습니다. 그는 세상 모두가 꺼려하며 기피하는 예수님에게서 뭔가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보석이 있음을 깨닫고 주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선생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언행에서 깨달은 것이라 밝힙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저 유명한 거듭남의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 위로부터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입니다. 니고데모는 문자 그대로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으로 이해했지만, 주님은 전혀 다른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거듭남, “하나님께서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심이 아니고서는” 라는 의미였습니다. 육적인 태어남이 아니라, 영적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은총으로 만 새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저마다 거듭남을 체험하며 살고 있다 하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이 그 한 예라 하겠습니다. 어제 보던 세상이 아니게 되었다면 말입니다. 물론 개중에는 악마에 의해 그리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비정하고 무모한 몹쓸 사람으로 변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말입니다. 저의 경우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러간 첫 시간이었습니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교장선생님의 강연이 있었는데, 삿보로 농학교(현 홋카이도 대학) 교수였던 윌리엄 S. 클락의 연설을 인용하셨습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돈을 위해서도 말고 이기적인 성취를 위해서도 말고, 사람들이 명성이라 부르는 덧없는 것을 위해서도 말고, 단지 인간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 그 한 시간의 강연에 저의 마음을 붙들고 있던 모든 두려움과 절망의 먹구름이 환하게 걷히는 감격이 솟구치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저를 새롭게 살아갈 힘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들 역시 자신의 삶을 통째로 뒤흔들거나 뒤바꾸게 한 사건 말입니다. 선생님의 강연은 그 뒤로 3년 내내 계속되었고,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는 말씀과 “의심 없는 믿음은 거짓일 수 있다.”, “사필귀정” 등은 평생을 살아가는데 나침반이 되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거듭남도 평생을 지지하기를 바래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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