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578호(2022. 2. 14. 월요일).
시편 시 58:6-8.
찬송 17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언니에게 쓰는 비밀편지> 언니, 방금 책 한 권을 다 읽었어. 책을 손에서 놓자마자, 언니에게 이 편지부터 스는 거야. 아, 세상에는 이런 엄마도 있구나 싶을 만큼, 부지런하고 억척스럽고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는 엄마 얘기를 담은 책이었어. 그런데 이 초능력 엄마는 심지어는 자식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기도 해. “엄마는 일어나 잠든 그를 보다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쓸어내렸다. 엄마가 미안하다. 엄마는 눈물을 닦기 위해 그의 이마에서 얼른 손을 거두었지만, 벌써 그의 얼굴에는 엄마의 눈물이 톡톡 떨어져 내렸다.” 이런 대목들이 있거든. 난 갑자기 엄마가 되는 것이 무서워지기도 했어. 이렇게 자기를 다 내어주고도 더 내줄 것이 없어서, 미안해하기까지 해야 한다면, 그것이 모성이라면 난 해낼 자신이 없겠다. 이런 생각. 그런데 언니, 난 금세 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어. 바로 우리 엄마 초능력 엄마도 아니고 억척스럽지도 않고, 심지어 이기적이기까지 했던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서 말이야. 왜 이 편지 제목이 비밀 편지인지 알겠지? 우리가 이젠 엄마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 사실 절대 비밀이야. 알겠지? 난 엄마를 생각하면 늘 비빔밥이 생각나. 비빔밥이란 그냥 참기름 간장 달걀부침에 김치나 깍두기만 들어가는, 초 간단한 음식이라고 했거든. 바쁜 날 엄마가 해 주던 비빔밥이 늘 그랬으니까. 그래서 식당에서 온갖 나물이 다 들어간 정식 비빔밥을 처음 봤을 때, 심지어 그게 더 이상하다고까지 생각했어. 익숙한 맛이 아니라서 절반도 채 못 먹었었지. 늘 자기 일로 바쁘던 엄마의 한 끼 해결법이 그 초간단 비빔밥이었다는 거, 이제는 알아. 어려선 늘 엄마가 고팠었는데, 그래서 애증의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 감정정리가 되기는 한 것 같아. 엄마나 행복했겠다. 그럼 됐다. 뭐 이런 생각이 들어. 그런데 언니에게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어?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9년 2월 16일 방송> a.
2.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을 고치신 예수(1-12절)”을 읽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자성어 중 “타산지석”, “역지사지”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언제 무슨 일에나 깨우침을 주는 귀한 교훈이기도 합니다. 은퇴 후 맹인 교회와 농인 교회를 다니면서 자비량 설교를 하고 있는데, 무슨 동정심에서 출발한 게 아니었습니다. 한물간 늙은이에게 기회를 주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런 장애우들을 만나면서 제가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란 평생 꿈을 간직하고 살다,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간 헬렌켈러를 예로 삼지 않더라도,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을 그분들을 바라볼 때면, 제가 누리는 특혜와 은총이 얼마나 크고 귀한 것인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눈에도 당장 그가 눈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지팡이를 들고 더듬거리고 있었는지, 아니면 낡은 양은 접시를 앞에 두고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변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불행한 이웃을 보고, 제자들은 무슨 영문인지 그의 불행이 누구 죗값이냐면서 주님께 질문을 한 것입니다. 측은지심이 생겨야 마땅할 순간에, 타인의 불행을 놓고 누구의 죄 값이냐고 논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정색을 하시곤 그 자신이나 부모의 죗값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려 하심이라 답하십니다.
맹인을 위한 자원봉사자가 되려면 적어도 35시간을 교육받아야 했습니다. 그 교육내용 중에는 맹인이 되어보는 시간도 있었는데, 딱 1시간을 맹인으로 사람과 자동차가 다니는 시내를 걸어보는 일입니다. 만일 옆에서 손을 잡아주거나 말로 안내하는 조력자가 없다면 그 1시간 안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코앞에 절벽이 있을 것 같은 두려움, 그런데 더 두려운 것은 멀쩡하게 눈뜬 못된 인간들이라고 합니다. 택시를 타면 으레 빙빙 돌면서 미터기를 2배로 올리는 사람들부터, 물건을 속이는 상인들까지, 때로는 뻔히 알면서도 그대로 지불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더 심한 폭언과 부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의 죗값도, 그 부모의 죗값도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말입니다. 본문에서는 그가 실로암 못에서 눈을 씻고 눈을 뜨는 기적을 체험하였지만, 그러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같은 모든 슬픈 비극은 결코 고통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눈을 뜨게 되는 것만이 기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더 높고 깊은 하나님의 신비를 볼 수 있는 기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한 맹인 장로님은 제가 바라보지 못하는 아름다운 세계를 늘 바라보고 있다 했습니다. 파도소리에서 비가 내리는 처마 밑에서, 그리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 악한 사람들의 속임수에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때 얼마나 행복하고 평안한지를 말입니다. 그들은 천사였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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