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576(2022. 2. 12. 토요일).

시편 시 58:1-3.

찬송 42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족사진이나 명함, 메모 같은 개인적인 몇 개의 것을 제외하면, 지갑 속에 우리들이 담고 다니는 것은 거의 비슷하지요. 지갑의 용도에 맞게 얼마간의 현금과 카드들이 들어 있을 테고요. 그래서 우리는 그 지갑의 두둑함이나 카드의 상태에 따라 마음이 든든하기도 하고 약간 불안해지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며칠 전 뭔가를 꺼내는 친구의 지갑 속에서 툭 떨어진 것은, 카드도 가족사진이나 어디선가 받은 명함도 아닌 아주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올 한 해 동안 공연될 작품들, 또 올해 우리나라를 찾을 공연단의 작품들을 예매해 놓은 영수증이었어요. 1년 치 모든 공연 가운데서 그 친구가 선택한 공연의 내용과 지정한 날짜, 좌석 등이 빽빽해 적혀 있는 그 종이 한 장, 감탄을 하면서 천천히 살펴보게 됐습니다.

그 계획표에 따르면, 친구는 3월에는 두 편의 무용 공연을 관람할 예정이고, 4월에는 안젤라 휴이츠의 바흐 평균율 전곡 연주를, 5월에는 첼로 전곡 연주 실내악 축제 등을 즐길 예정이더군요. 그렇게 6, 7, 8, 12월까지, 매월 한 두 개씩의 공연들을, 그 친구는 이미 지난 해 12월 말에 결정해, 예매해 놓았다고 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급품들을 흔히 명품이라고 부르지요. 명품 핸드백, 명품 구두, 의류들, 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그런 호칭을 붙여서 부르곤 하는데요. 평소에는 약간 부정적인 그 호칭을 여기에는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즐기기 위해 예약해 둔 그 시간, 그 날이 오면 즐길 그 시간들, 과연 명품 시간들이라고 불러도 되겠구나 싶었지요. 삶의 여유라는 게 그냥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계획을 세워서 아주 적극적으로 얻어야 되는 것이고, 그렇게 얻어진 값진 시간들이야 말로, 명품 시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테지요. <KBS FM 1, FM가정음악, 2008213일 방송>

 

2.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계신 분(48-59)”을 읽었습니다.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를 종종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육친과 형제자매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로써,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느니, 오늘 본문에서처럼 예수님 자신의 말을 잘 듣고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얼마나 복장이 터지는 시간들을 가졌을까 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서 마귀 들린 사람이라고 악담을 퍼 부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면 얼마나 다르게 생각했을까요? 유대인들의 악담은 어쩌면 정상적인 말이라고 했을지 모릅니다. 아브라함도 죽었고, 수많은 예언자들도 죽었는데,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니 말입니다. 속된 말로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신앙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신앙인이라는 사실을 자주 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인은 이성 너머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현상 너머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신 분이라는 말씀에서 고민을 하고 이를 받아들였다면, 물위를 걸으셨다고 할 때는 더 이상 고민하지 말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매번 믿음 없는 사람처럼 옛 모습으로 돌아오니 말입니다. 저는 가끔 저의 할머니를 추억합니다. 제가 중학생일 때 별세하셨으니까 많은 일화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아주 늦게 예수를 믿으셨습니다. 그 전에는 철저하게 민간신앙을 신봉하신 분으로, 자정에 정한수를 떠 놓고 삼신할미며 조왕신에게 치성을 드리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된 뒤에도 그런 신앙의 잔재가 남아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비비면서 절을 하며 기도하는 모습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내용만은 확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자신을 돌보신다는 믿음 말입니다. 별세하시던 날에는 찬송을 불러달라 하셨고, 천국이 보인다며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시대보다도 훨씬 더 오래 전, 태초부터 주님께서 하나님과 더불어 계셨다는 말씀을 믿는 믿음이 우리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말씀만으로 가버나움 관리의 종을 살리신 분을 믿고,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주님을 구주로 믿는다면 말입니다. 이성적이지 않다고,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흔들리는 믿음이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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