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823.

시편 124:7-8.

찬송 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한 기차를 타고 현재에서 미래로 여행합니다. 우리는 모두 창밖을 내다봅니다. 내다보는 일에도 이제 싫증이 납니다. 우리는 모두 한 기차를 타고 달려갑니다. 사람들 모두 각기 다른 차칸에.” E. 케스트너의 시 <기차타기>의 마지막 연이었습니다. 부제로 삶과 죽음을 생각할 때라 붙어 있습니다. 지금은 타고 있지만, 곧 내릴 것입니다.

 

2. 성령강림절 후 다섯 번째 주일의 구약성경 레 19:9-18을 본문으로 거룩한 삶으로의 초대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거룩이라는 단어는 도덕적인 냄새를 풍기는 용어로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신앙적인 용어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코데쉬(קֹדֶשׁ)인데 구별 또는 분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룩함이란 도덕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신앙적 의미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2).

영화 제목은 기억이 남아 있지 않지만, 로마 바티칸 공화국 안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미켈란젤로가 프레스코 화법으로 <천지창조>를 비롯하여 <최후의 심판>까지 성경에 나오는 중요 주제들을 그리고 있었습니다(1508-1512). 하루는 작업을 의뢰한 교황 율리오 2세가 작업현장을 찾아 천장화를 그리고 있는 위를 쳐다보았는데, 따뜻한 물방울들이 떨어졌습니다. 화공/畫工이 실례를 하고 있었습니다. 46개월이 지나 그 자리에 탁자가 놓이자, 시스티나 성당이라 불렸습니다. 어느 부잣집 식탁이 될 수도 있었는데, 성당 안에 놓이자 거룩한 제단이 되고, 똑같은 물이지만 세례대에 부어진 물은 성수/聖水가 되며, 사제가 입는 도포는 성의/聖衣가 됩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서약하는 순간 그는 성인/聖人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구별될 때, 세상과는 다른 거룩함이 깃들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거룩이란 구별과 다름인데 두 가지 주제를 말씀합니다(9-18).

하나님을 대하는 것들은 수직적인 측면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웃과 사람들을 대하는 수평적인 측면입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4)는 명령과 제물을 드리는 특정한 방식(5-8),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지 않는 것(12) 등을 수직적인 거룩이라 말씀합니다. 그 외의 대부분의 명령은 수평적인 거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난민들을 위해 밭과 포도원의 일부를 추수하지 않고 남겨놓는 것(9-10), 남의 것을 훔치지 않으며,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하지 않는 것(11), 이웃을 억압하거나 착취하지 않고, 노동자의 임금을 제때 지불하는 것(13), 장애가 있는 이들을 괴롭히지 않는 것(14), 공평과 정의로 재판하는 것(15), 이웃을 희생하여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는 것(16), 형제를 미워하지 않으며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17) 등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은 모든 사람들이 짊어진 거룩한 과제입니다(18-19, 22:37-40).

우리 주님은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사랑의 계명을 요약 정리하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고(6:4-9), 둘째는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22:39).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 사랑을 추상적으로 생각할 뿐 아니라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구약에서는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1:1). 저의 장로님 중 한 분은 성균관에서 효자로 표창한 분이었는데, 그 장로님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효도라고 말씀하곤 했습니다. 이웃사랑의 정석/定石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모범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라고 주님은 가르치셨습니다(10:25-37).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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