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632호(2022. 4. 9. 토요일).
시편 시 69:26-28.
찬송 36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뜰에서 놀던 어린 아이가 제 귓속에서 소리가 나니까, 옆의 아이를 보고 자기 귀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귀를 마주 대고 아무리 들어봐야 들릴 리가 없습니다. 한 아이가 귓속에서 분명히 피리소리도 같고, 벌 소리도 같은 앵앵거리는 소리가 뱅뱅 도는데, 옆의 아이에게 들어보라고 하니까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니까, 화가 나서 발끈 하더라 라는 이야기, 연암 박지원이 남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겠지요. 내 마음과 다르다,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본 것처럼 봐 주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오늘은 안타까워하지도 말고, 발끈하지도 말고, “당신에게는 안 들리는 군요. 안 보이는 군요. 네 그렇군요.” 이렇게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년 4월 13일 방송>
2. “믿음의 생활(16-18절)”을 읽었습니다. 완도에서 오셨다는 한 목사님이 제게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더 힘들고 어렵기만 합니까?” 그리고 중국 청도에서 만난 한 조선족 목사님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는 굶어야 하고 아이들은 학비를 낼 수 없어야 정상입니까?” 그 목사님의 교회 성도는 500명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교인들이 헌금도 잘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장로님들이 목사의 사례비를 너무 적게 주면서 이렇게 말하더라고 합니다. 목사가 어려워야 더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한다고 말입니다. 두 분 목사님의 질문은 모두 우문(愚問)이었습니다. 지난 달 강남 인터콘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한국 군 선교 연합회 임원회>가 있었는데, 대형교회 목사들이 모여서, 병원선교와 학원선교에 이어 군선교도 위기에 처했다며, 세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하나는 더 이상 초코파이를 먹으러 교회에 오지 않는다는 점, 군내 인권문제로 간부 등이 예배 참석을 권유하지 않는 점, 병사들이 스마트폰과 일체가 되어 생활관 밖으로 나오지 않는 점 등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군선교의 주요 활동내용이 초코파이를 제공하거나, 군 간부들에 의한 강압적인 권유, 시대 조류를 읽지 못한 안목부재가 문제로 지적된 것이라 합니다.
오늘 사도의 말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16절). 사실 신앙생활이란 처음부터 힘든 일이어서 낙심할 가능성 또는 잠재성이 있었습니다.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 말씀하는 까닭은, 겉으로 보아서는 낡고 후퇴하는 것 같지만, 속사람은 새로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병원선교든 학원선교든 군 선교든 그동안 세속적인 성공주의에 취해 있었던 것을 반성하고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인의 숫자를 늘리는 것으로 신앙의 진정성을 평가하려 했던 것 말입니다. 두 번째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18절). 저의 장로님 한 분이 로마의 베드로 성당을 다녀 와서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외형적인 규모 뿐 아니라 예술작품으로 가득 차 있는 성당이 부러웠던 모양입니다. 저 역시도 많은 감동을 받은바 크지만, 신앙은 처음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사모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에 영향을 줄 순 있어도, 대등하게 저울질할 성질은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모든 선교의 전략을 일신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막지 못한 의인 열 명을 기억하는 일이고, 기드온의 300명 군사가 미디안의 125,000명을 이긴 사건을 기억하는 일입니다(사 8:10-12). 그렇습니다. 진정성있는 신앙이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믿고 살아가는 일입니다. 초코파이나 군 간부의 강권에 의지하는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나 주변을 감동시키는 병사들을 육성하는 일에 눈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숫자 채우기에 급급한 선교로써는 세상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키기에는 애시당초 빗나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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