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852(2022. 11. 15. 화요일).

시편 시 106:37-39.

찬송 34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우리는 삶의 매 순간을 기다림으로 채워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녁상을 물리고 하루 동안의 긴장을 늘어놓을 수 있는 이 시간을 기다리기도 하고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오늘보다는 좀 더 나은 내일을 기다리겠지요.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그 시간들이 기다림의 행복으로 가득차서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이 되었던 기억 있으실 겁니다. 박문호 시 김규환 곡 <님이 오시는지>는 그러한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낸 곡입니다.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달빛 머언 길 님이 오시는가. 갈 숲에 이는 바람, 그대 발자췰까? 흐르는 물소리 님의 노래인가, 내 맘은 외로워 한없이 떨리고, 새벽이 오려는지 바람만 차오네. 백합화 꿈꾸는 들녘을 지나, 달빛 먼 길 내 님이 오시는가. 풀물에 배인 치마 끌고 오는 소리, 꽃향기 헤치고 님이 오시는가. 내 마음은 떨리어 끝없이 헤매고, 새벽이 오려는지 바람이 이네. 바람이 이네.”

    김규환은 KBS 합창단의 상임 지휘자로 근무하면서 사무실 휴지통에서 구겨진 오선지를 발견합니다. 오선지가 다른 이가 작곡한 <님이 오시는지>의 작곡이었지요. 담당자의 마음에 들지 않아 버려진 작품이었습니다. 김규환은 아름다운 시상에 감흥을 받아서 다시 작곡하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김규환의 님이 오시는지 입니다. 그런데 수소문을 해도 그 시인 박문호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하지요. 결국 후에 박문호의 처남 박영식이 찾아와 곡을 쓴지 20년 만에 시인 유족과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시인을 찾아 헤맨 작곡가의 오랜 기다림이 곡을 통해 전해지는 것 같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1114일 방송>

 

2. “죄의 유혹과 용서(1-4)”, “믿음의 힘(5-6)” 그리고 종의 의무(7-10)”을 읽었습니다. 세 단락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각각 다른 일화들을 묶어 놓은 것입니다. 이럴 경우 저는 두 세 주제를 한꺼번에 묵상하거나 설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공부와는 달리 설교는 20-3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귀에 의지하는 말씀인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일한 주제와 그 주제를 집중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여러 개의 주제를 나열하게 되면 주제가 뒤죽박죽이 되어, “그냥 좋은 말씀이었어.” 정도로 청자에게는 아무런 임팩트가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으로, 표제어처럼 믿음이 가진 힘에 대해서 좀 더 깊은 묵상을 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뭔가 있을 것 같은 운을 떼면 기대치가 높아질 것 같습니다만, 그동안 저는 어떤 원칙이나 해답을 내놓는 것 보다는 묵상하는 주체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묵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거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역할로 그 할 바를 다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요즘은 사그라져가는 말이지만 enabler가 되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주님께 부탁을 하였습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해 주소서.”라고 말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행하시는 수많은 일들이 놀랍고 위대한 것에 늘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초라해 보이는 자신들의 모습에서 일종의 자괴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 해답으로 믿음의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충만한 믿음만 있다면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는 기적에서부터 온갖 난치병 불치병을 고치는 기적들을 만들어내는 신바람 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을 더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동문서답과 같이 돌아왔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으로 하신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의 생각은 엄청나게 빗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의 부족을 문제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주님의 말씀은 그 믿음이라는 게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양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믿음이란 존재 자체가 없었다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묻겠습니다. 우린 믿음이란 것을 가지고 있기나 한가?”라고 말입니다. 제가 최근 몇 년 전까지 예루살렘에서 사온 겨자씨 한 주먹을 제 서재 책 사이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한 두 개를 따로 두었다면 우리 눈에 보일지 모를 정도로 매우 작은 씨앗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서 그 작은 겨자씨만 한 믿음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황망한 상황이 어찌하여 생겼을까요? 그것은 믿음이 무엇인지 몰라서 생긴 현상입니다. 지금도 교회에 가면 교회를 가득 채우고 있는 그 믿습니다.”, 실제 크리스천들의 삶에서는 겨자씨 한 알만큼도 찾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을 주목해야 할 이유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예와 순종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삶을 다 내던지고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며, 자신의 모든 생각까지도 다 포기하는 그런 순종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습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여전히 믿음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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