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874(2022. 12. 7. 수요일).

시편 시 109:4-6.

찬송 17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음악을 듣다 보면, 그 노래에 맞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질 때가 있습니다. 금수현의 <그네>는 그런 의미에서 노래를 듣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운 한 복을 단아하게 차려 입은 여인이 그네를 타는 아름답고도 평화로운 정경을 떠오르게 만들지요. 가곡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알고 계시겠습니다만, <그네>의 시를 쓴 이는 금수현의 장모이자, 문인인 김말봉 선생입니다. 자신의 자작시를 남다른 사위 사랑에 대한 표현으로 금수현에게 전했고, 이러한 장모의 애정에 심혈을 기우려 곡을 붙인 것으로, 그 역시 화답해 탄생한 곡이지요. 김말봉 시 금수현 곡 그네 소개해 드립니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 한번 구르니 나무 끝에 아련하고, 두 번을 거듭 차니 사바가 발아래라. 마음의 일만 근심은 바람이 실어가네.”

    부산의 유복한 집 장남으로 태어나나서, 아버지의 바람대로 상업학교를 졸업합니다만, 금수현은 음악에 꿈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 도쿄음악 대학의 전신인 동양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수학한 후에, 부산 동래고에 부임 취임합니다만, 반년 안에 결혼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지요. 학교 측은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모교 졸업생을 수소문하고, 인천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전해금을 소개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 해 둘은 결혼식을 올리게 되지요. 전해금과의 인연으로 대표곡인 <그네>를 완성하고, 그가 가장 아끼는 곡으로 손꼽은 <구름>을 만들게 됩니다. 가곡에 있어서 가사는 하위적이거나 부수적인 존재가 아니라, 독립된 개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후 많은 음악 운동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평생을 헌신한 그의 음악 활동에서, 음악을 또 하나의 종교로 읽었던 그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127일 방송>

 

2. “이사야를 부르심(1-13)”을 읽었습니다. 우리 기독교 용어가 세상 사람들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비아냥거리는 말 속에도 들어 있긴 합니다만, 언젠가는 그 용어들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되는 날, 엄청난 삶의 변화가 올 테니 말입니다. “부르심혹은 소명이라는 말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이 부르심 혹은 소명이란 저 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으로 또는 누군가의 뜻으로 일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그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에는 부르신 분의 뜻을 따라서 일해야 할 것입니다. 가령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분들은 국민의 부르심으로 일하는 일꾼들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선출직 공무원이나, 그 밖의 학교에 입학을 하거나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될 때 역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르심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 근본적인 책임을 이 부르심을 가장 일찍 깨달은 교회가 짊어져야 할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일꾼들이 전혀 부르심을 받았다는 인식을 하지 않고, 제가 잘 나서 높이 오른 것으로 생각하고 오만 방자한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그렇고 장로가 그렇습니다. 빌리그래함 여의도 집회에서 중간 중간에 설교자로 나온 분들이 많았는데, 그 중의 유명인사 한 분은 나는 예수님보다 더 많은 군중 앞에서 설교한 사람이라.”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자기는 예수님보다 더 유명하고 위대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 방자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생겨나니까 세상 사람들도 부름을 받은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방자해 지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남왕국 웃시야에서 히스기야 시대까지, 4대 왕이 통치하던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의 부친 아모스는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시대에 활동하던 예언자로, 본래 예루살렘 남부 드고아의 작은 산지에서 양을 치고 뽕나무를 가꾸는 농부였는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언자로 활동하였는데, 이사야 역시 그런 아버지의 배경으로 시대 정황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날, 이사야는 환상을 보고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날개가 여섯 달린 스랍들이 드높은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장면이었는데 거룩하시다.”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제 나는 죽었구나. 더러운 죄인이 하나님을 뵈었으니 죽었구나.” 탄식할 때, 스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뜨거운 돌을 불집게로 집어 내 입에 대고 말씀하시기를 너의 입술에 이것이 닿았으니 너의 악은 가시고 너의 죄를 사라졌다.” 하였고, 주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내가 누구를 보낼 것인가? 누가 우리를 대신해서 갈 것인가?” 하실 때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자기 백성을 위한 예언자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는 식으로 말합니다만, 기독교적 사고방식이라면 이사야를 응답하게 한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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