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95호(2023. 4. 7. 성주간 금요일).
시편 시 128:1-3.
찬송 53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이 세 청록파 시인들은 [청록집]을 기획하기 전까지만 해도 서로 큰 친분이 없던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정지용 시인의 추천에 의해 등단하게 된 세 시인들이, [청록집] 출간을 위해서 서로 만나 교분을 쌓게 되면서부터, 이들은 인생의 벗으로써 그리고 시를 쓰는 같은 문인으로써, 서로 잊을 수 없는 인연을 만들게 됩니다. 그중 박목월과 조지훈의 인연은 알려져 있다시피 많이 남달랐지요. 목월에게 이러한 부제가 붙은 <완화삼>이라는 시를 조지훈이 헌정하자, 박목월 역시 <나그네>를 조지훈에게 화답합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경주에 머무르고 있던 목월에게 어느 날 조지훈이 찾아옵니다. 술을 좋아했던 두 사람은 몇날 며칠이고 술을 벗하며 시를 짓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취하면 시를 읊곤 했던 조지훈이, 먼저 <완화삼>을 목월에게 즉석에서 낭송을 했고, 그의 시에서 술 익는 마을 저녁 놀, 나그네 이런 단어를 넣어서, 박목월 역시 방금 들으신 <나그네>를 조지훈에게 바쳤지요. 훗날 조지훈이 먼저 세상을 떴을 때, 박목월은 한동안 곡기를 끊을 정도로 무척이나 큰 상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추모시를 그의 영전에 바치는 것으로 애도를 표하기도 했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4월 7일 방송>
2. “거룩한 생활(13-20절)”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성금요일로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기억하며 경건한 시간을 갖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할 바입니다. 그래서 교회 전통에 따르면 오늘 저녁에는 성금요일에 합당한 다양한 순서를 가지곤 합니다. 그 첫 번째는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을 묵상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주님의 죽으심으로 세상이 캄캄해 진 것을 기억하며 이른바 어둠의 예배(테네브라이)를 드립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절망입니다. 그러나 이 절망은 완전히 새로운 희망을 바라보는 절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꺼이 이 짧은 절망의 시간을 경험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다 삼킬 것 같은 어둠의 세력에 대항하는 빛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제단에 두 개의 초에 불을 붙인 후 모든 전등을 소등합니다. 그리고 사회자에 의해서 제단의 초에서 옮겨진 촛불을 교우들에게 전합니다. “주님은 빛이십니다. 이 빛으로 세상을 밝히십시오.”라면서 옆에 있는 교우들에게 전합니다. 그리고 순서에 따라서 예배는 진행됩니다. 비록 작은 촛불에 불과하지만, 세상을 집어 삼킬 듯한 어둠의 세력이 이 빛을 감당해 낼 수가 없습니다. 오늘 묵상할 자료는 벧전 1:13-20로 어둠의 시간에, 혹은 절망의 시간에 우리들이 묵상하기에 적합한 말씀입니다. 그것은 거룩한 생활을 위한 다짐과 실천입니다. 사도는 거룩한 삶이란 첫째,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라고 권고합니다. 둘째, 인생이 나그네 생활임을 기억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이란 흔히들 얘기하는 대로 열심히 교회 다니고 기도생활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그 말씀을 따라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나그네 인생임을 알고, 주어진 짧은 나그네 길을 허투루 살지 않고 값지게 사는 일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어제는 두 살 위인 외가 사촌 형님이 전화를 했습니다. 젊은 날에는 공사장에서 잡일을 하셨는데, 나이가 드니까 온 몸이 성한 곳이 없다고 하십니다. 특히 허리가 많이 아프고 걷는 게 힘들다 하십니다. 가난하게 사셨지만 인정이 많으셔서 항상 뭔가 도와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러 부산으로 갔을 때는 드문드문 찾아오셨지만 예배당에 앉으시면 졸음에 빠져버리시곤 했습니다. 당신 말씀처럼 몸뚱이가 재산이라 하루도 일하러 나가지 않으면 죄짓는 것 같다며 머슴처럼 일하셨고 그래서 항상 고단하셨습니다. 이제 살만큼 살게 되고 자녀들도 다 장성해서 3층 집을 짓고 자녀들과 함께 살고 계시는데, 늘 고향집과 형제들을 그리워하면서도 거동이 불편해서 안타까워하십니다. 저는 이 형님에게만은 진심을 다해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정성을 다해서 말씀에 대꾸를 합니다. 보고 싶어 하는 아우들이 있는 집으로 초대를 했지만, 번번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십니다. 오는 사월 초파일의 부친의 추도식에 오시지 못하면 찾아뵐 생각입니다. 나그네 인생길을 두려운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주님을 대하듯 주변을 섬기는 삶일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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