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112(2023. 8. 2. 수요일).

시편 시 9:1-3.

찬송 21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쯤 남녘의 모시 풀 밭엔 연둣빛에 작은 모시 꽃들이 한창이겠지요. 뻣뻣하고 조직이 굵은 모시풀이 푹 삶아지고 쪼개져서 결이 고운 모시로 거듭난다는 것을 어른이 되고도 한참이 된 후에야 알았습니다. 달큼한 흙냄새와 더불어서 살갗에 까슬까슬하게 와 닿던 모시의 감촉, 낯설고 불편했던 그 느낌이 그리워지는 것을 보니까, 여름이 한창인 것 같습니다.

    각 가정마다 에어컨 같은 냉방 기기들이 많이 보급되기 전에는, 여름이 되면 이웃들과 한결 더 가까운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집집마다 그간 닫아 두었던 창이나 문들을 죄다 열고 있었으니까 말이지요. 열린 창과 문 사이로, 이웃집의 소리가 고스란히 들리곤 했습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 텔레비전을 보고 웃는 소리, 언성을 높이는 것까지 모두 말입니다. 조금의 가식도 없이 전해지는 소리들을 통해서, 이웃집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된 기분이었지요. 지금은 오히려 에어컨 덕분에 겨울 만큼이나 꼭꼭 문을 닫아걸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모로 오래전 우리네가 살았던 풍경들이 무척이나 그리워집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85일 방송>

 

2. “레위를 부르심(13-17)”단식에 대한 질문(18-22)”을 읽었습니다. 첫 단락은 주님께서 택하신 열 두 제자 중에서 특별한 인물로 레위 마태를 들 수가 있는데, 첫째는 국민적 원성을 듣는 총독 빌라도의 앞잡이 세리였다는 것과, 둘째는 지식인의 하나로 제자들을 무식한 사람들로 매도할 수 없다는 점일 것입니다. 나름 묵상할 의미가 있겠으나 오늘 묵상자료는 둘째 단락으로 삼았습니다. 우선 금식이냐 단식이냐로 단어 선택의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공동번역본>을 제외하고 <개역본><새번역본> 그리고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모두 금식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성경 원어인 네스테이아(νηστεια)가난해서 못 먹어 굶주림, ‘종교의식으로써 먹지 않음으로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는 금식보다는 단식이 더 적절하다 하겠으며, 종교의식으로 단식하는 경우라고 할 때, 소문을 낼 수도 없는 것은 물론, 단식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초췌한 몰골이나 찌푸리는 표정도 짓지 말라는 주님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신앙 행위는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비난조로 질문한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단식을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왜 단식을 하지 않는가?”고 말입니다. 신앙 행위로써 단식이라고 할 때, 타인의 단식 여부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쑥스러운 월권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질문으로 잔칫집 신랑의 친구들 얘기로 발전시킵니다. 신랑과 함께 있는 잔칫집에서 무슨 단식이 가당키냐 하는 말씀이며, 신랑을 뺏기는 날에는 단식하게 될 것이라며, 의례적인 단식의 허상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낡은 옷에 새 천조각 비유는 단식 토론과는 다른 항목으로 분류해 놓고 있긴 합니다만, 낡은 것과 새것의 관계는 되풀이해서 묵상할 주제입니다. 낡은 옷에 새 천조각을 덧대는 것은 도움은커녕 더 빨리 찢어지는 것이라는 점이나, 마찬가지 이유로 낡은 가죽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는 것은 큰 실수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낡은 틀 낡은 사고방식을 가지서는 새로운 정신, 새로운 사상을 담을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매우 예민하고 긴 설명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만, 창조적이고 온전한 정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 또한 바꿔야 한다는 말입니다. 거듭남이라는 새로운 차원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하게 가정교사를 경험한 일로 미루어, 학생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기 시작한 시점은 그 공통점이 몸가짐의 변화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님들은 공부하는 자세에 대해서 강조하고 강조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부를 시작할 때는 먼저 세수를 하고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라고 말입니다. 영국의 사립학교들이 정장차림에 넥타이를 매고 공부하게 하는 것과 닮은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지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일이지만, 겉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부단한 훈련에 기초한 습관으로 기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기독인으로 살아가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맑고 깨끗한 생각이 머물 수 있도록 매일 기도와 성경을 읽게 하거나 시를 세 편 이상 읽는다든지 하는 등의 노력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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