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140호(2023. 8. 30. 수요일).
시편 시 17:4-6.
찬송 36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산이 많아서 인지 몰라도 우리나라에는 여러 설화를 지니고 있는 고개들이 있습니다. 경남 마산에 있는 <만날 고개 이야기> 역시 바로 그런 오랜 설화가운데 하나인데요. 병든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위해서, 소녀는 채 스물도 되지 않은 나이에 시집을 갔습니다. 하지만 시집살이가 무척 고단했고, 소녀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갔지요. 소녀가 가족들이 생각날 때마다 언덕에 올랐었다 전합니다. 딸의 안부를 궁금해 했던 어머니 역시 같은 시간 고개에 올랐고 말입니다.
“만날 고개 달뜨거든, 그리움의 피리 불리라. 만날 고개 달뜨거든, 비단 구두 밟고 오시라. 달무리로 넘치는 그리움, 그리움. 영혼 속에 울리는 그리움, 그리움. 기약 없이 떠난 님, 달빛처럼 돌아오시라. 만날 고개 달뜨거든, 그리움에 손짓 하리라. 만날 고개 달뜨거든, 은빛 파도 타고 오시라. 은하수로 흐르는 그리움, 그리움. 영원 속에 사무친 그리움, 그리움. 송별 없이 떠난 님, 별빛처럼 돌아오시라.”
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완성 한 곡이라는 점이 이색적입니다. 작곡자 김 봉천은 마산이 고향입니다. 마산은 가곡의 고장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우리의 가곡의 시와 곡을 완성한 예술가들의 고향이기도 하지요. 지역의 오랜 설화가 이처럼 가곡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가곡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정 목일 시, 김 봉천 곡 <만날 고개> 이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8월 30일 방송>
2. “부자 청년 – 낙타와 바늘귀(17-27절)”과 “백배의 상(28-31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신앙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게 하는 흥미로운 말씀들입니다. 저의 묵상은 둘째 단락을 택하였습니다. 최근 저와 교제가 이어진 50년 전에 동문수학하던 친구들은 매년 학교 신문 장학생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성실한 친구들입니다. 그때 열심히 공부했던 까닭은 순전히 진리에 대한 열정보다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난 때문에 학업을 계속할 유일한 수단이었다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깨달았습니다. 혼자서만 힘든 세상에 버려진 것이 아니었었다고 말입니다. 그 당시 저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삶이 힘겨울 때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때문이라고 생각을 해왔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싸우듯 공부했던 것입니다. 가난으로부터 살아남는 것이나, 꿈꾸는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길 밖에 없었다고 말입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 본문은 자칫 오해받기에 딱 알맞은 내용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목회를 하다 은퇴한 동기생이 있는데, 그 분은 ROTC 장교로 복무하다 조금 뒤늦게 목회자가 되었는데, 그 분이 초청한 그의 기숙사 책상 앞 벽면에는 “국회로!”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치고는 낯선 목표를 가지고 있다 생각했는데, 다행히(?) 처음 목표로 돌아왔고, 정치가가 아니라 목사로 일생을 살아간 것입니다.
본문에는 주님과 베드로 사이의 대화가 나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밝히고 있는데, 주님께서 아시는 대로 가족과 생업 그리고 모든 꿈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 살았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누구든지 주님이신 당신과 복음을 위하여 부모 형제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를 받겠지만,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백배나 축복을 받겠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고 말입니다. 놀랍게도 주님께서 우리들 신앙인들에게 현세의 축복과 내세의 축복을 약속하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상급이라든지 축복이라든지 하는 말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어떤 상이나 축복과는 무관하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바른 삶의 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상이나 축복에 집착하느라 생기는 부작용 때문에, 경멸은 아니지만 대체로 멀리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삶의 이력이 늘어나면서 상이나 축복의 필요성이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 인생의 삶이 너무 고단하기 때문에, 비록 하찮게 보이고 별것 아닌 듯하지만, 상이나 축복이라는 위로가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딱 거기까지 만입니다. 위로가 필요한 인간들에게는 상은 그런대로 기쁨이 되고, 축복은 삶을 지속해 나갈 동기나 힘이 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역시 그랬습니다. 인생의 석양이 그림자를 드리울 때는 확연해 지는 것 말입니다. 세상의 부귀공명(富貴功名)이란 것들이 한낱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무리 바위에 깊이 제 이름 석자를 새겨 넣었다 해도, 되레 서글픔을 더할 뿐이라고 말입니다. 인생은 찰나의 순간이며 허망한 것들이며, 영원한 천국에서는 어느 것 하나도 고려사항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오직 이 세상에서 인생길을 건너가는 동안에 잠깐 힘을 주는 것 뿐이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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