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142(2023. 9. 1. 금요일).

시편 시 17:10-13.

찬송 42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을의 정갈하고 차분한 분위기는 유독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감정의 진폭 역시도 넓게 고저를 반복하기 보다는 작게 흔들리는 일이 더 많고 말이지요. 목소리를 높여서 분명하게 말하는 것 보다는, 마음속으로 되뇌이는 것이 더 어울리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 가을이라는 계절이 지니는 특유의 무게감 때문이겠지요. 가을이 시작되는 구월의 첫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 아마도 이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홀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구비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김현승 시인을 두고 가을의 시인, 또는 고독의 시인이라 불리곤 합니다. 그러한 별명을 얻게 된 데는, 이 시 <가을의 기도>가 물론 가장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겠지요. 시인 김현승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이 가을 시를 좋아하는 많은 분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고 암송하는 작품이니까 말입니다. 김현승의 시는 서정적이고 사색적이라는 평가를 받곤 합니다.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고, 또 위로 받는 것 같은 그러한 기분을 더불어 얻을 수 있으니까요. 김현승 시, 안 정준 곡 <가을의 기도> 들으셨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91일 방송>

 

2. “여리고의 소경(46-52)”을 읽었습니다. 캄캄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칠흑 같은 밤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하늘에는 별빛을 볼 수 있으니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설령 짙은 구름으로 별빛조차 볼 수 없는 밤이라고 해도 반딧불이가 있을 수도 있고, 그도 없다면 풀벌레 소리나 바람에 부대끼는 나뭇잎 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파도 소리도 들리고 사람들의 말소리도 잘 들리는데도 불구하고, 단 한 걸음 앞길을 분간할 수 없는 시각 장애인의 삶이란 비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가 일하던 교회에서 부산 맹학교에 한 달에 한번 돼지고기를 볶아서 기숙사의 학생들을 찾아갔던 일이 있었습니다. 식사 기도를 마치자마자 맹인 학생들은 정신없이 반찬을 밥그릇에 붓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뺏기라도 하는 듯 밥그릇을 감싸 쥐고 밥을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손에 쥐고 있지 않은 것은 남의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훗날 소감을 묻는 저의 부탁에 여선교회 회원들은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며, 불신의 세계를 여실히 실감했다 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리고의 소경으로 자리를 옮겨보십시다. 이 소경은 디메오의 아들 바디메오라고 실명을 밝히고 있는 것도 매우 이례적입니다. 그는 주님 일행이 자기 가까이 이르자 소리를 크게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자, 더 큰 소리를 지릅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제자들의 만류에도 굴하지 않고 더 크게 소리를 질러서, 마침내 주님이 그를 부르게 했던 것입니다.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주님의 물음에,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자,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고 말씀하시자, 그는 눈을 뜨게 되었고 주를 따르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한낱 한 소경의 눈을 뜨게 한 기적 이야기 정도로 지나칠 말씀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의 직관으로는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이 소경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진리란 바로 우리가 힘써 추구해야 할 믿음이란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바디메오가 가졌던 믿음은 첫째 예수 그분께 자신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예수 그분께 자신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예수 그분께 자신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떠다 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역시 바디메오와 같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들을 주님께 가져가고 맡기고 떠다 넘기는 행동을 주목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는 달리, 소위 자기만의 방식의 믿음을 고집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 사람만의 전이해가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열광주의자나 신비주의자들이 간증하는 것을 많이 들어두었던 것이나, 심지어 무당 유튜브에서 하는 말을 인용하면서 말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중심주제와는 전혀 엉뚱하게 말입니다. 저는 저의 할머니의 믿음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예수교인이 되시기 전에는 삼신할머니를 섬기셨습니다.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치성을 드리셨는데, 그 자세로 교회를 다니셨습니다. 하루 전에 하얀 고무신을 씻어 말리고, 고운 치마적삼을 다려두었다가, 주일 새벽에 목욕재계하고 머리를 곱게 빗고 교회를 가십니다. 그리고 교회당 마룻바닥에 엎드려서 두 손을 정성껏 모으고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오직 주님께 믿습니다. 맡깁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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