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157(2023. 9. 16. 토요일).

시편 시 18:41-43.

찬송 44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문득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내 삶의 어디쯤 인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앞만 보고 발을 빼기만도 벅찬 시기를 지나, 한번쯤 뒤를 돌아봐도 좋겠구나. 그저 저절로 알아지는 그런 때 말인데요. 축하를 건네기도 하고 웃으며 눈을 마주하는 시간만큼, 서로의 어깨를 쓰다듬거나, 누군가의 손을 힘주어 잡아 주는 일이 늘어나 버린 걸 깨닫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이겠지요. 그때가 되면 우리는 알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공평하지도 또 영원하지 않다는 걸 말입니다. 그냥 흘러 보낸 시간들을 어떤 순간이 되면 분명 후회하고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것 까지도 말입니다.

    어제 가곡 계에 하나의 비보가 전해졌습니다. <보리피리><녹두 꽃>으로 친숙한 작곡가 조 념 선생의 부음이었지요. 명절의 마지막 날이어서인지 부음은 더 쓸쓸하고 갑작스럽게 느껴집니다. 조 념 선생은 철학적인 성향이 강한 음악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늘 책을 곁에 두고 많은 철학과 문학서적을 탐독했다고, 지은들은 말하곤 했지요. 선생은 그 이유를 자신의 이름에 생각 념()자가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농담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조 념의 작품들은 작곡가의 성품을 닮았듯이 가볍지 않고, 조금은 비극적인 느낌의 곡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다시 갈 수 없었던 북녘에 고향을 그리며 쓴 <내 고향 산천>, 한하운의 시에 곡을 붙인 <보리피리>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916일 방송>

 

2. “잡히신 예수(43-50)”도망한 젊은이(51-52)”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몸에 고운 삼베만을 두른 젊은이가 예수를 따라 가다가 사람들에게 붙들리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삼베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 매우 짧은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마가복음서에서만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일화입니다. 탈무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상점 앞에는 많은 형제와 친구가 있지만, 감옥 문 앞에는 형제도 친구도 없다.” 그닐카의 국제주석 <마가복음서>에서는 벌거벗고 도망친 제자에 관한 일화는 제자들의 도망친 장면을 마무리 짓는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식으로 마무리진 것일까? <중략> 고대 화가들이 자기 그림의 한 모퉁이에 자신을 그려 넣듯이 여기서 설화자(說話者)가 자신을 들어낸 것이 아닐까?”(그닐카, 국제주석 마가복음2, p.358). 개연성(蓋然性)이 높은 해석입니다. 우리는 종종 부끄러운 우리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서 입을 떼지 못하곤 합니다. 그러나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에 그런 자기 모습을 아주 작게 드려 넣곤 했습니다. 비겁하고 용기 없는 자기 자신을 숨기는 것 보다는 밝히는 것이 조금은 양심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몸에 걸치고 있던 유일한 가림막인 삼베도 버리고 도망가고 있다는 것은 고백적인 표현이 아니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주님을 따르겠다고 손을 번쩍 번쩍 들곤 합니다. 십자가를 지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큰 소리로 외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알몸으로 도망갔던 제자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것이 못내 부끄럽고 초라하게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서를 쓰는 기자에게, 혹은 그 스스로 이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작심을 하고 이 구절을 삽입하였을 것입니다.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나는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 길을 따르다가, 나를 붙잡는 로마 군사의 손을 뿌리치고 정신없이 달려 도망하였습니다. 마음으로는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었는데 말입니다. 내 생각과는 다르게 내 몸은 주님을 떠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너무 부끄럽고 너무 죄송합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내 믿음의 수준이 이 밖에는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그것 역시 믿을 수 없습니다. 저의 연약함을 주님께서 아시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어느 복음가의 가사처럼, Just remember I'm a human and then to forget So remind me, remind me, Dear Lord. / 저는 인간이고 그래서 잘 잊어버린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십시오.” 그의 고백을 듣는 저도 그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저도 도망갔습니다. 주님!” 하고 외치고 싶었습니다만, 고작 일기장에 한 줄 끼워 넣었을 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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