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159(2023. 9. 18. 월요일).

시편 시 18:47-48.

찬송 38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 크고 밝았던 달이 일주일 사이에 많이 작아졌습니다. 달이 작아진 만큼 밤하늘의 어두움은 조금 더 짙어 졌고요. 어두워진 밤하늘에서 달빛을 대신하고 있는 건 별들이지요. 달이 밝을 때는 잘 보이지 않았다가, 지금에서야 본능의 빛을 환하게 밝혀주는 그 별들 말입니다. 별은 달빛이 환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비록 밝은 달빛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었지요. 빛이 사그라진 후에야 보이는 것들, 그 작은 불빛의 존재를 늘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달빛이 환할 때는 보이지 않던 별들은 달이 이지러지면서 서서히 들어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어떤 생의 진리와도 비슷하지요. 생의 어두운 측면 과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그 묵묵히 그 곁을 지켜주는 존재의 소중함 말입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급급할 때는 까맣게 잊고 지내지요. 그걸 알고 있는 지금도 별수 없는 것을 보면, 아마 눈 감는 날까지도 같은 후회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늘 너무 뒤늦게 깨닫는다고 변명하면서 말이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923일 방송>

 

2. “대제사장 앞에 서신 예수(53-64)”을 읽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극히 형식적인 종교재판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비록 식민통치를 받고 있는 중에서도 자신들의 신앙과 전통에 대해서는 그들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는 일상적인 관례가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굳이 식민지를 지배하는 총독에게 힘을 낭비하는 방법이었을지 모릅니다. 특히 로마 시절에는 잘 알려진 관행이었던 것입니다. 유대인의 종교재판은 이른바 산헤드린이라고 하는 유대인 의회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대제사장 그룹과 율법사들 그리고 장로들로 23명의 판관과 69명의 평회원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치 경찰을 두어서 행정을 뒷받침하였지만, 사형 등 중범죄 인을 처벌할 권리는 없었고, 로마 총독에게 이첩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산헤드린에서의 재판은 형식적인 요건은 다 갖추고 있는 듯 했습니다. 로마법은 증거제일주의를 택하고 있기에, 당연히 증인 심문이 있었고 그 증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예수님을 심문하였습니다. 그런데 급조된 증인 심문이었는지, 증인들끼리도 말이 맞지 않아서 엉터리 재판임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묵비권을 행사합니다. 마침내 재판관인 대제사장은 본심을 드러냅니다.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가?” 그러자 주님은 시인하면서 장차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있는 것과 심판주로 구름타고 올 것을 볼 것이라.” 고 말입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은 자기 옷자락을 찢는 쇼를 벌리고, 사형감이라고 단정 짓습니다. 그들은 원하는 답을 얻은 셈입니다. 그렇게 해서 재판은 종료됩니다.

    우리들 역사에는 수도 없이 많은 종교재판이 단행되었습니다. 정적을 치워버리기에는 가장 적합한 죄명이 이단자였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1618-1648년에 발생한 30년 전쟁으로 신성로마제국과 개신교 국가들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무려 800만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숫자가 5,000-7,000만이라고 하니 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도 아랍 세계나 인도 등에서는 종교적인 법률을 핑계로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랑과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치는 종교가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증오를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31년 전 한 신학대학 학장이 종교다원주의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에 회부돼 출교처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명목상의 죄목이었고, 이면에는 그 교단 안에 있었던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3년 후에 별세하고 말았는데, 아직도 복권이 되지 않았다며 후학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출교처분은 다반사가 되어서 결코 낯설지 않은 죄명이 되었습니다. 신학적인 다툼은 치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판결은 떳떳해야 할 것입니다. 손해배상을 할 수 있고, 일체의 공직에서 제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인간이 동료 인간의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때문입니다. 오히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하라 하십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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