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495(2024. 8. 19. 월요일).

시편 78:26-29.

찬송 50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를 사랑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 펄 벅 여사가 1960년대에 한국 시골을 방문하다가, 어느 날 해질 무렵, 지게에 볏단을 진 채 소달구지에도 볏단을 싣고 가던 농부를 보았다. 펄 벅은 농부의 지게 짐을 소달구지에 실어 버리면 힘들지 않을 거고, 소달구지에 농부가 타고 가면 더 편할 것이라는 생각에 농부에게 물었다. "왜 소달구지를 타지 않고 힘들게 지고 갑니까?" 농부가 말했다. “에이! 어떻게 타고 갑니까? 저도 하루 종일 일했지만, 소도 힘들었을 텐데요. 그러니 짐도 나누어서 지고 가야지요.” 펄 벅 이 말에 감동하였고, 훗날 그의 작품 <살아있는 갈대> 첫 대목에서 이 일화를 소개하며,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묘사했다 한다. 사람끼리는 물론 짐승에게도 인격적 대우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2. “사도들의 기적(12-16)”사도들이 받은 두 번째 박해(17-26)”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갈릴리 혹은 디베리아에서의 기적들이 예수님의 행적들과 관계가 있는 것이라면, 예루살렘 특히 솔로몬의 행각 주변에서의 기적들은 사도행전 교회의 행적들과 관계가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비록 시간과 장소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여전히 변함없이 기적들이 크리스천 공동체가 세상에 보여주었던 사건들이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 앞에 멈춰 서야 할 것입니다. 예수 공동체나 사도 공동체에게 있어서 기적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고 말입니다. 단순히 배고프고 병든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나, 그런 현상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고, 이런 치유기적 현상은 복음을 전하는 구성요소였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복음, 기쁜 소식을 기쁜 소식으로 인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예수님 자신의 말씀처럼, 먹고 배부르기 위해서,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환경에서는 사람들은 복음에 귀를 기우리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 옛날 시골 장터에서 소위 약 장수들이 원숭이와 큰 구렁이를 소품으로 가지고 와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싶으면 갑작스럽게 약 파는 작업을 하듯 비슷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요즘 복음을 전하는 방식은 어떻게 발전했을까요? 입담좋은 사람들을 내세우기도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복음가를 열창할 수 있었을 것이며, 진부하긴 하지만 영화를 상영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된 일화이긴 합니다만, 제가 대학시험을 준비할 때, 제게 생물학을 가르쳐 주신 중학교 선생님의 집에서 방 한 칸을 빌려 공부한 일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자식 농사를 잘 지으셔서, 둘째 아드님은 경희대학 약대 학장이 되셨고, 첫째 아드님은 무슨 과목이었는지는 기억에 나지 않지만,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 가르치시기도 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열심을 품고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기독교를 변증하던 저를 이래저래 놀려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중의 하나가 기적이야기입니다. 저는 성경에 나오는 기적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강하게 주장했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수많은 종교 역시 기적설화가 넘쳐난다 반론을 펴셨습니다. 변증가로 나선 이상 억지로라도 이기고 싶어서, 우리 주님의 진실하심과 순수하신 성품과 삶을 끌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선생님은 그런 저의 변증을 한 두 마디 말씀으로 제어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소개하시는 선인/先人들 중에는 그런 분들이 차고 넘친다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지금 같은 그런 방식으로는 논쟁은 싱겁게 끝났을 것입니다. 복음은 논쟁으로나 또는 증명으로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매우 특별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백성들이 성도들을 칭찬했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칭찬받을 일을 많이 했었다는 얘기입니다. 복음은 칭찬 듣는 사람들이 전해야 할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합니다. 욕을 먹는 사람의 전도를 누가 귀기우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두 번째는 주를 믿는 남녀의 수가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아멘 할렐루야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인격적인 변화를 하게 된 새로운 사람을 의미한다 생각합니다. 진정과 신령으로 주를 의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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