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3954호(2012. 3. 14. 수요일).
시편 134:1-3.
찬송 7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2층 창에서 줄을 잡고 있는 사람이 남자인 게 분명하면, 여자가 질투심에서 편지를 가로 챈다는 얘기는 틀린 얘기가 되지요. 반대로 여자면 남자 얘기가 틀린 얘기가 됩니다. 그러나 틀리고 맞고의 상관없이, 같은 그림에서 여러 가지 드라마가 나오니 그림의 실제 정황과 상관없이, 재미있고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혹시 학창시절에 건네다가 혹은 건네받다가 들켰던 편지, 기억나시는지요? 지금보다 훨씬 엄격하던 시절엔 여고생이 남학생한테 편지를 받으면, 그 사실 만으로도 학교에서 크게 혼이 나고 벌을 받았다고 하지요. 여학교 선생님이 편지를 쓴 남학생 학교에 연락을 해서 남학생도 단단히 혼이 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때론 부모님이 편지 자체를 없애버리고, 편지가 온 사실 자체를 감춘 경우도 있었지요. 그래서 편지 보낸 남학생만 혼자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거나, 답장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심하게는 남학생이 다른 도시로 이사 가서, 2년이 넘게 보낸 편지를 엄마가 계속 없애고 일체 모른 척 했다는 분도 있었는데요. 몇 년 뒤에야 엄마가 사과를 했는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고 얘기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지요. 하지만 연애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훨씬 더 자유로워지자, 사랑을 편지에 담아 전하는 일 자체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만약 칼 슈피츠백이 요즘 화가였다면, 줄 끝에 편지 대신 값이 제 각각인 초콜릿 상자나 선물 꾸러미를 그리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상상도 해 보게 되네요.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2월 14일 방송>b.
2. 우리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과, 세상을 친히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잘도 외우면서도, 실제 일상에서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을 살려하기 보다는 자신의 의지나 노력으로 살아보려고 발버둥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이라는 것을 자기 삶의 내용처럼 생각하지 못하고 따로 국밥처럼 서로 나누어 놓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세계의 가장 강력한 국가의 왕이 요셉의 형제들이 왔다는 소식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 요셉의 부모님까지 애급으로 모셔오게 하는 파격적인 시혜를 베풀었다는 점입니다. 요셉이 애급에 기여한 공로에 비하면 바로의 포상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릅니다. 그 보다는 바로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감사의 정표를 남겼다는 점입니다. 그가 약속한 애급 땅 아름다운 곳을 약속한 점은, 마치 하나님의 일꾼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듯한 태도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바로를 통해서도 섭리하신다고 말할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섭리는 지금도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을 통해서도, 간교한 유대 지도자들을 통해서도, 심지어 빌라도 같은 소심한 지도자를 통해서도 역사(役事)하시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마음의 눈을 열어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일이란 전혀 없으니 말입니다. 이런 영혼의 창이 열려있는 하루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묵상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셉이 이룬 꿈. / 창 47:1-26. (0) | 2019.05.05 |
---|---|
총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 창 46:1-7. (0) | 2019.05.05 |
항상 뒤편에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 창 45:1-15. (0) | 2019.05.05 |
불편한 진실을 떠올리게 하지만. / 창 44:18-34. (0) | 2019.05.05 |
은혜의 욕구를 발견하시길. / 창 43:16-34. (0) | 2019.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