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131호(2012. 9. 7. 금요일).
시편 32:1-4.
찬송 8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병에 걸리고, 병과 함께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병에 걸려서 꼼짝하기 힘들 정도가 돼 버리면, 사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내가 걸린 병이 행복을 방해하는 침입자이자 무찔러야 할 적으로만 느껴집니다. 몸도 마음도 점점 더 지쳐만 가지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김풍기 교수의 [예치에 매혹되다] 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와요. “뜻하지 않게 찾아오기는 했지만, 병 역시 내 몸에 찾아온 진귀한 손님이다. 손님을 푸대접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그를 맞아 잘 대접하다 보면, 병은 어느새 친밀한 벗으로 변한다. 그 벗이 나를 죽음으로 데려갈 수도 있지만, 내 삶의 차원을 전혀 다른 곳으로 안내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병을 잘 대접했던 시인이 있었습니다. 조지훈 시인은 병을 의인화 시켜서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바로 <병에게>라는 시입니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의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더 눈물겹네/ 나는 자네에게서 내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 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 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애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는 무슨 일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미일세/ 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몇 날 몇 달을 설복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 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다시 찾아 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리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그려.” 이 시인의 대범한 마음 자세가 부럽습니다. 아마 그런 마음의 힘은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에서 비롯됐겠지요. 병이란 무찔러야할 적이 아니라, 잘 대접해야 할 친구로 대하기. 그 친구가 들려주는 삶의 진리에 대한 목소리에 귀기우려보기. 물론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요, 앞으로 그렇게 마음먹어 보겠노라 다짐해 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6월 8일 방송>
2. 종종 묻게 되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뜻이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질문을 하게 된 배경에는 우리 자신의 뜻이 모호해지고 뒤엉켜있다고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저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에 대해서는 바울 사도의 깨달음에 따라서 이해를 합니다(살전 5:16-18). 그런데 하나님 당신 자신의 뜻이 무엇일까를 생각할 때, 오늘 본문은 가장 명쾌한 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40절의 말씀 “하나님(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섭리는 모두 이 진리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을 고작 허물투성이 뿐인 인간을 구원하는 것에 제한할 수만은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들 인간의 형편에서 생각한다면, 이 보다 더 크고 더 위대한 하나님의 뜻은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한 랍비와의 대화중에 나온 말씀입니다. 그 랍비는 하나님의 일이란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28절).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29절) 대답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 앞에서 우리들이 오랫동안 멈추었으면 합니다. 요즘 하나님의 일을 한답시고 법석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소개드린 바 있습니다만, 어느 교회는 70 여 가지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사교섭에 온 신경을 다 쓰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할 것인가 하고 난감해 집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있는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얼마나 열심히 성경을 묵상하는지, 등등 생각을 해 보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데 힘쓰지 않고 있다면, 우리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 같은 수렁에 빠져 있는지를 알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들의 문제들이 왜 불거질 수 밖인지 알 것도 같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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