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134호(2012. 9. 10. 월요일).
시편 33:1-3.
찬송 28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도 모르는 내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이, 내 인생에 끼치는 영향은 상당합니다. 머피의 법칙을 창조한 정신의학자 조셉 머피 박사는요, 잠재의식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하지요. “우리의 삶의 법칙은 잠재의식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의식과 잠재의식은 흔히 빙산에 비유되는데요. 빙산은 약 10%정도만 수면위로 떠올라 있고요. 나머지 90%는 수면 아래에 잠겨 있지요. 그러니 이 90%의 잠재의식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우리 삶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 틀림없습니다. 머치지키 도시다카의 [당신의 소중한 꿈을 이루는 보물지도]라는 책이 있는데요.
잠재의식의 특성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를 해 놨습니다. “말보다 이미지에 더 크게 반응한다. 감정이 담긴 것에 강하게 반응한다. 자주 반복되는 것에 반응한다. 현실과 상상을 구별하지 못한다. 부정형을 이해하지 못한다. 긴장을 풀면 더 쉽게 움직인다. 주어는 모두 1인칭으로 이해한다. 잠재의식은 다른 사람의 잠재의식과 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강한 생각은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8가지입니다. 잠재의식이 말보다 이미지에 또 감정이 담긴 것에, 자주 반복되는 것에 강하게 반응한다는 얘기는요, 이미지 트레이닝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잠재의식이 현실과 상상을 구별하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어떤 뜻일까요? 비록 실패했다고 해도, 성공한 장면을 거듭해서 떠올리면 잠재의식은 성공한 것으로 인식을 해서 자신감이 상승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 잠재의식은 부정형을 긍정형으로 이해하는 특성이 있어서요. 스스로 어떤 것을 하지 말아야지. 무엇무엇을 하면 안 돼, 이렇게 의식을 할수록 잠재의식 속에는 더욱 더 그 생각으로 가득 찬다고 합니다. 또 주어는 모두 1인층으로 이해한다 라는 말은 더욱 의미심장해요. 솔직히 제 3자에 대해서 “아,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참 나쁜 사람이야. 당연히 실패해야지.” 라고 아무리 생각한다한들 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고요. 정작 본인이 그 영향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잠재의식의 주어에는 2인칭도 3인칭도 없고, 오로지 1인칭만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잠재의식을 스스로 조절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긴장을 풀었을 때, 하루 중에는 아침과 밤이라고 하는데요. 이 시간을 통해서 매일 꾸준히 내 삶을 움직이는 법칙 잠재의식을 훈련한다면, 작게는 오늘 하루가 즐겁고, 길게는 운명까지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말이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6월 18일 방송>
2. 오늘 본문은 성만찬에 관한 말씀으로, 공관복음서는 물론(마 26:26-29, 막 14:22-25, 눅 22:17-19) 요한복음서에서도 취급하고 있는 점은, 이 말씀의 중요성을 암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성찬 제정의 말씀으로 제자들을 대상으로 가르친 교훈이라고 한다면, 요한복음서에서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성찬에 대한 논쟁이 되고 있는 점이 큰 차이점이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성찬 이해는 오늘날에만 의견의 차이가 분분한 게 아니라, 이미 예수님 당시에도 논쟁거리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우선 이 구절에 대해서 문자적인 해석을 할 여지가 많지만, 그것은 잘못입니다. 실제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의 죽으심에 관한 의미와 이를 계승할 신앙내용을 명료하게 밝히고 있는 점에서 중요성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류를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구원행동으로, 십자가 신앙을 구체적으로 계승하는 것만이 참된 신앙이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에서 주님의 모든 것을 다 주신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위대한 행동으로 계속 반복되어야 할 신앙의 행위가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로써 모든 기독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서(53-58절)
성찬예식을 행할 엄숙한 과제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성도들이 모일 때마다 이른바 “떡을 떼는 예식”을 만들었던 것이고 (행 2:42, 46, 20:7, 11), 곧 바로 거룩한 제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성찬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문제, <화체설>을 주장하는 로마 가톨릭교회나 <실재설>을 주장하는 루터교회, 그리고 <영적 임재설>을 주장하는 칼뱅의 교회들 마지막으로 <상징설>을 주장하는 쯔빙글리 교회들이 있는데, 이런 신학적 이해에 관해서 논쟁하기 보다 더 우선해야 할 일은, 초대 교회 이래 계속되어온 성찬의 예배를 계승해야 한다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성찬은 하나님의 일로써(opera Dei)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총의 표시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는 말 중의 하나가, “제 설교가 하나님의 은총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성찬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총을 넉넉하게 전달할 테니 조금도 염려하지 말고 예배에 참석하십시오. 언제든 풍성한 하나님의 은총을 맛보실 수 있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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