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136호(2012. 9. 12. 수요일).
시편 33:10-12.
찬송 30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한 조사에서 취업 면접에서 제일 큰 감점 요인이 되는 습관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 발표에 의하면 1위는 말끝 흐리기였습니다. 면접 응시자들이 말을 정확하게 매듭짓지 않고 우물우물 흐리면서 끝맺는 게, 면접관들에게는 가장 거슬린다는 것이지요. 몇 년 전의 조사이긴 하지만 대학 입학을 위한 구술면접에서도 같은 조사 결과가 있었습니다. 대입 수험생들이 구술 면접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말끝 흐리기였던 거지요. 화법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그런 말끝 흐리기가 가장 많이 나타나는 시기는 중학교 때라고 합니다. 중학생 정도부터는, 어른의 언어와 사회적인언어를 써야 하지요. 그러면서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밝힐 일이 많고 자기변명이나 합리화도 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변명이나 합리화가 내심 떳떳하지 못하다는 판단력도 생기지요. 그런데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국어교육에서 말하기 보다는 문장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말을 너무 또박또박 잘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정도였지요.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말끝을 분명하게 매듭짓기 보다는 희미하게 흐리고 흐지부지하는 게 많은 학생들에게 습관이 된 겁니다. 그런 말끝을 흐리는 습관이 면접 장소에서 주는 인상은 무엇보다 자신감이 없어 보이게 한다고 하네요. 또 면접이든 취직에 대해서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느낌도 줍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한 파악이 어려우니 답답한 느낌도 주겠지요. 그런데 한의학에서는 말끝 흐리는 습관을 조금 다르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몸 안에 기가 부족해도 말끝을 흐리거나 짧은 호흡으로 숨이 쉽게 찬다고 합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6월 27일 방송>a.
2. 가족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육친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가깝게 살았다는 점이 오히려 진면목을 놓쳐버릴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많은 시간을 지켜볼 수 있었고, 말씨며 습관 등도 꿰뚫고 있는 관계가 가족입니다. 그렇게 대단할 것 같지 않은 너무도 평범한 모습들 말입니다. 그런데 남들은 위인처럼 떠받드는가 하면 심지어 진심을 다해서 따르는 무리를 바라볼 때는 부화가 치솟는 모양입니다. 이런 가족관계는 현상적(現象的) 가족이라고 해야 할지 모릅니다. 겉으로 들어난 것만 나눈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한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내밀한 교제가 뒤 따르는 가족관계가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속에 담긴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함께 나누고 다독이는 관계의 중요성 말입니다.
우리 주님의 형제들은 초막절을 맞아서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 주님을 보고 등을 떠미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못 비난조로 들립니다.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4절) 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가족이라고 해서 인격적인 유대감에서 함량이 부족했던 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넓게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는 점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흔히 쓰는 말로 “자식은 울타리” 라고 하듯, 가족 역시 울타리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각기 저마다의 생각과 희망을 향해서 각개전투를 하듯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구심점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른바 가풍(家風)이라든지, 신념의 연대(連帶))이라든지 혹은 신앙공동체가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우애가 깊고 화목한 관계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신앙이 다르다고 하면 그 괴리는 어떤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비아냥거리듯 허물을 들추기로 한다면 가족보다 더 나쁜 이웃은 없을지 모릅니다. 지금 주님의 형제들은 남보다 더 못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한 듯합니다.
3. 방송 녹취가 어려운 일이지만, 그 일 자체가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모릅니다. 꼭 저 자신을 위해서 주는 충고와 격려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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