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138호(2012. 9. 14. 금요일).
시편 33:18-22.
찬송 23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틈틈이” 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틈이 난 곳마다, 겨를이 있을 때마다” 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런 틈틈이 라는 말을 한동안 참 좋아했습니다. 어떤 일과 일 사이사이 뭔가를 하는 시간과 시간에 난, 작고 사소한 틈마저도 꼼꼼하고 알뜰하게 활용하는 느낌이 들어서였습니다. 시간을 한 치의 낭비도 없이 아주 완벽하게 쓰는 사람이 된듯해서 이었습니다. 그것을 자신만의 틈틈이 정신이라고 이름까지 붙이고 아주 즐거워했지요. 영어회화에 취미를 붙인 뒤로는 더욱 그랬습니다. 중요한 일과 일을 하는 사이사이에, 무심코 라도 들을 수 있도록 늘 영어방송을 켜놓았습니다. 어떤 자투리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영어실력을 키우는데 쓰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무심코 틈틈이 듣는 것만으로도, 알게 모르게 듣기 실력이 늘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지 벌써 2년이 넘어가건만, 웬일인지실력이 느는 느낌은커녕, 오히려 더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틈틈이 얼마나 많이 듣고 있는데 배신감마저 들었지요. 그러다 우연히 한 영어책 제목에 눈이 갔습니다. [10년 내내 초보인 당신을 위한 영어책]이라는 제목이었지요. 영어 회화 책이 아니라, 영어회화가 왜 늘지 않는 지에 대한 일종의 설명서였는데, 거기에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학창시절 미술 수업시간에 미술 배운지 30년이 넘었는데, 난 왜 그림을 이렇게 못 그리지?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운전면허를 따 놓기만 하고, 운전은 전혀 하지 않은 체 10년인데, 난 왜 이렇게 운전이 안 늘지?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유독 영어에 관해서만은 사람들은 중학교나 초등학교 때부터 치면 영어배운지 10년 20년도 넘었는데, 난 왜 이렇게 영어를 못하지? 회화 실력이 왜 이렇게 안 늘지? 생각한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6월 21일 방송>a.
2. 우리의 신앙을 서 있게 하고 지탱하게 해 주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신앙의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초막절 끝날에 하신 예수님의 설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는데, 심지어 예수님을 잡으러 파견되었던 제사장의 사병(私兵)들마저 그랬다는 것이 흥미롭기까지 합니다. 오죽했으면 바리새인들이 한 말 “너희도 미혹되었느냐?”에서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오라> 이런 주제로 요약될 수 있는 우리주님의 설교는, 성경 이사야서 12:3에 나오는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감동을 받게 된다는 것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의 역사(役事)하심이 없이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서 기자는 믿음에 이르는, 또는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믿게 하는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믿음에 이르는 길, 그것은 믿는 자의 믿고자 하는 마음보다 훨씬 이전에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인도하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의지로 “예수님은 나의 구주”라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철저하게 죄 가운데 파묻힌 죄인으로써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서 주님을 바라보았고 주님을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힘이 내 안에 있는 그 무엇으로 생각했지만 훗날 성경을 통해서 그 분이 성령 하나님이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감동과 감화를 받게 되고 죄를 회개하게 되며 감사하게 되는 것은 모두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 신앙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믿음으로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부지런히 묵상할 이유가 있으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할 이유가 예 있다고 말입니다.
3. 임시예배처소를 계약했습니다. 적어도 앞으로 2년 동안은 셋방에서 부대끼며 지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가진 일이니 참 참는 일만 남아 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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