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135호(2012. 9. 11. 화요일).
시편 33:4-9.
찬송 51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도디 스미스의 소설 [성안의 카산드라]는, 영국과 미국에서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대를 이어가며 읽힌다는 말이 과언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참 재미있습니다. 소설 줄거리는 요, 오만과 편견 때문에 운명의 상대를 바로 알아보지 못해 벌어지는 해프닝. 언뜻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연상시키지만요, 그보다 더 위트가 넘칩니다. 다 허물어져 가는 고성에서, 하루하루 끼니걱정을 하면서 살고 있는 카산드라는 일기를 쓰는 것이 낙입니다. 언니 로즈는 부자와 결혼해서 공주처럼 사는 것이 꿈이지요. 드디어 로즈가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줄 남자 사이먼을 만났습니다. 카산드라는 풀밭에 들어 누워서 언니가 사이먼과 결혼을 하는 공상에 빠지지요. “언니를 바라보는 사이먼을 상상했다. 눈을 떴다. 그가 보였다. 진짜 사이먼 코튼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카산드라는 상상속의 남자가 현실로 나타나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고 무덤덤하게 말하지만요, 독자는 혹시나 하는 느낌을 갖습니다. 상상속의 남자가 현실로, 상상이 현실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두 사람은 함께 숲속을 산책해요. 사이먼이 말하지요. “영국 시골은 정말 특별해.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만이 있는 게 아니야. 이렇게 사람 심금을 울려. 왜 그럴까?” 카산드라는 아름다움에서 슬픔을 느낀다는 사이먼의 말에 공감하면서 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리지요. “아버지는 그건 아름다운 것들이 속절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또 그 점이 우리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이 구절은요, 앞서 나왔던 대목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나는 에드먼드 윌러의 시 <가자 사랑스런 로즈여>가 떠올랐다. 놀랍도록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것들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왜 그렇게 짧고도 짧은지.” 그런데요, 아름다운데도 슬픈 이유가 오로지 그것뿐일까요? 사이먼도 카산드라도, 또 카산드라의 아버지도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쳤어요. 소설의 끝에 이르러 같은 장소에서 사이먼이 카산드라에게 사랑을 고백하지요. “하지만 오늘 오후는 울적하지 않아. 너와 함께 있을 때는 결코 울적하지 않아.” 아름다운데 행복한데 혼자일 때 슬퍼집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것을 혼자만의 기억으로만 간직해야 할 때, 우리는 울적해 집니다. 어쩌면요,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있을지 없을지 모를 영원을 함께 할 사람이라기보다, 현재의 아름다운 순간순간을 공유할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KBS FM 1출발 FM과 함께, 2012년 6월 14일 방송>
2. 듣기 좋은 말과 들어야 할 말은 다를 것입니다. 성공주의자들은 들어야 할 말보다는 듣기 좋은 말에 공을 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후자를 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회당 설교(52-59절)는 따르던 제자들에게 걸림이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63절)라는 말을 듣고는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금치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주님 곁을 떠나가게 되었다고 요한복음서 기자는 밝히고 있습니다(66절). 그게 어느 정도인지, 전하는 분위기를 소개하기를, 열 두 제자에게 묻기까지 하셨다고 말입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이 구절에서 저는 한없는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배신감이 컸으면 이런 처연한 질문을 하셨을까 해서 말입니다.
성공하는 사람, 인기 있는 사람은 뭔가 장점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연예인들이나 정치가들은 그런 점에 있어서 남다르게 인기 관리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짓들도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선거철만 되면 노인정에 가서 넙죽 넙죽 절하는 것 등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인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매년 가을은 개신교회에서는 총회가 열리고, 각종 선거가 있습니다. 그런데 금품 수수는 물론 온갖 회유 등, 수법은 세상 사람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지도자들은 공약(空約)이라 불리는 인기발언도 서슴지 않습니다. 앞날을 보장해 준다며 기상천외한 청사진들을 제시합니다. 그들은 교회의 존재의미가 무엇인지, 세상에서의 교회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 지도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경건한 신앙생활을 소망하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 가운데 코람데오(coram Deo) 라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인데, 기독자들이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로 생각하고서 살아가자는 뜻입니다. 루터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달았고,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의인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물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실존일 때 말입니다. 참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위대한 깨우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동시에 의인이라고 말입니다. 인기인이 되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의 죄인이며 동시에 의인이기를 열망해야 하겠습니다.
3. 묵상식구 김동환목사님은 5일간 동아시아 선교여행을 마치고 귀국하셨고, 김광중 목사님은 월요일부터 네팔 선교에 참가하고 계십니다. 자랑스러운 식구들로 은혜의 부스러기를 기대해 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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