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181호(2012. 10. 27. 토요일).
시편 42:6-11.
찬송 35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프리카 깊은 밀림 속에는 유츠프라카치아라는 꽃이 살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햇살과 밀림이 뿜어대는 이슬로 연명하는데요. 얼마나 심약한지 근처를 지나던 곤충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신음신음 앓다가 끝내 죽고 만다고 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번 닿았던 손길이 그 다음날도 잊지 않고 찾아와서 쓰다듬어 주면, 그 여린 생을 이어갑니다. 자신이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는 확인이 한 가닥의 희망이 되는 거지요. 이 꽃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영혼. 겉으로 아무리 강한 척 해도 우리들의 영혼은 너나 할 것 없이 그처럼 심약하고 여린 유츠프라카치아를 꼭 닮았습니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시들어 버릴 수 있고, 어쩌면 죽어버릴지 모르지요. 그러나 이 꽃의 꽃말은 “사랑해 주세요.” 아무리 나를 시름시름 앓게 했던 당사자라고 해도, 진심어린 관심과 사랑을 보여준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삶이란 그렇게 가늘고 길게 이어집니다. 누구에게나 내가 사랑해 주어야 할 나만의 유츠프라카치아가 있습니다. 그 꽃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느냐 하면, 이문제 시인의 <농담>이라는 시가 말해 줍니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해 종은 더 아파야 한다” 나만의 유츠프라카치아를 알게 됐을 때, 우리는 어쩌면 가슴이 아플지도 모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 꽃은 너무나도 심약하고 여리니까요. 그래서 사랑해 줘야 하니까요. 그러다 힘에 붙여 흔들릴 때, 로레인 핸스베리가 쓴 <오늘 그를 위해> 중에 일부를 읽어봅니다. “누군가를 가장 사랑해야 할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모든 게 순조롭고 편하게 느껴질 때?/ 그렇다면 아직도 당신은 사랑을 모르는 것이다/ 못 믿을 사람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할 때/
상대방의 마음을 할퀴며 자신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갈 때/ 그런 때야 말로 사랑은 진정 필요한 것/ 그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그가 누군지 올바로 판단하려면/ 그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겪었던 고통과 슬픔/ 그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 그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리/ 오늘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려보아라.”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9월 12일 방송>
2. 오늘 본문에는 로마 총독 베스도의 고민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미 사도 바울이 자신의 문제를 황제 가이사에게 상소를 한 상황이 되어, 부득불 사도에게 죄목을 붙여야 했습니다. 적어도 법치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에서는 범죄행위를 구성하는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서는 기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총독은 기소할 충분한 자료를 찾기 위해서 아그립바 왕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사도를 “살려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24-25절) 며 자신의 속내를 보이고 있습니다. 총독은 기소할 이유 없음을 이유로 방면하든지, 아니면 제대로 된 제목을 붙여서 가이사의 법정에 고소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습니다. 마음으로는 방면해야 하지만, 자신의 통치 기반인 유대나라의 분위기로는 고소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최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천지 장막성전>에 대해서 기존 교회들이 사회 법정에 기대하는 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거짓 가르침을 한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범죄행위를 하지 않는 한, 기소요건이 되지 못하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정교분리의 원칙이 존재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총독의 고민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지 흥미롭게 지켜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묵상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친 짓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 / 행 26:27-27:8. (0) | 2019.05.13 |
---|---|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를 고백할 수 있기를. / 행 26:1-23. (0) | 2019.05.13 |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는 무엇인가? / 행 24:24-25:12. (0) | 2019.05.13 |
로마 총독이 주재하는 법정 일화. / 행 24:1-23. (0) | 2019.05.13 |
억지로 복음을 믿게 할 수 있을까? / 행 23:25-35. (0) | 2019.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