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191(2012. 11. 6. 화요일).

시편 45:6-11.

찬송 50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덧없다” 는 말을 사전적으로 풀이하면첫 번째알지 못하는 가운데 지나가는 시간이 매우 빠르다. 두 번째보람이나 쓸모가 없어 헛되고 허전하다. 셰익스피어의 < 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니산드르사의 대사는 이 두 가지 뜻을 다 품고 있습니다. “사랑은 소리처럼 빠르고 그림자처럼 허무하니 꿈같이 짧지요. 사랑은 밤하늘을 때리는 번개처럼 덧없어서 한 순간 천지를 비추어도 사람들이 보라 ! 하고 외치는 순간어둠의 아가리가 이것을 삼켜버리니. 좋은 것은 그만큼 빨리 사라지는 법인가요?” 사랑뿐 만이 아닙니다현자들은 늘 충고하지요. “너희들이 기를 쓰고 이루려고 하는 대부분의 것들이사실은 인생자체가 소리처럼 빠르고, 그림자처럼 허무하고꿈같이 짧다고번개처럼 덧없다고.” 연암 박지원도 육십에 이르러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사물은 어느 것 하나 그 자리에 머무는 법이 없이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 소멸하는 것일 뿐이니라. 우리네 인생도 저와 같아서무엇을 이룬다함도 허망할 뿐이고무엇을 남긴다 함도 덧없을 따름이다. 그저 왔다가 바람결에 사라져 버리는 연기와 같은 것을. 그것이 비록 한 때는 아름다운 향기였다 할지라도지나고 나면 싸늘히 식은 재에 불과한 것을.” 이건 염세주의가 아닙니다연암은 순리를 말한 것이었고요. 셰익스피어는 분명히 말했지요. “좋은 것은 그만큼 빨리 사라지는 법인가요?” 라고요. 여기에서 빨리라는 속도의 기준은요빨리 빨리를 외치고 사는 우리와는 분명히 달라서아마 영원을 척도로 했을 겁니다. 만약에 모든 것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면그것도 빨리 사라지지 않는다면과연 우리는 아름다움을 알았을까요?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우리 가슴에 진동이 있는 까닭은 그것이 유한함과 덧없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니 아름다움이란 영원하고 변함없는 것이 아니라, 써 먹을 데 없어서 무용하고덧없는 것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병준의 [사람을 만나러 길을 나서다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 덧없다 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오래도록 여운을 남깁니다. “덧없는 아름다움들이 나를 사로잡았다오래 누릴 수 없는 아름다움들. 그리고 오래 아파했다풍경들 사람들 짧고 덧없는그래서 아름다운 것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830일 방송>

 

2. 어느 시대나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은 지도자라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사람들을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그럼으로 자신을 지도자라고 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항상 조심스럽게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오래 전에 서울 명동 성당 앞에서 <1일 감옥 체험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체험 행사에 참가한 이들은 사람들에게 판결을 내리는 법관들이었는데, 자신들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줄 수 있는가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회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명심하게 하고, 그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적시(摘示)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먼저 사회 지도층에 대한 경고로(1-4), 그들이 항상 기억할 것은 공의라는 주제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실제는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는 공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밝힙니다.그 결과는 백성들의 피를 빨고 살을 먹는 짓들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너무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어서, 아예 의당 그러려니 할 뿐 문제로도 삼지 않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월권행위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자리에 있는 동안 온갖 방법으로 부를 축재하기 위해서 부정과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순한 이권 챙기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비극을 만들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제게 신학을 배운 한 예비역 중령이 있었는데, 강남의 모래밭을 평당 1만원씩 100평을 사게 되었는데, 당시 고급 장교들 사이에서는 훗날 금싸라기 땅이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상행위(商行爲)였을까요? 그러나 수많은 서민들에게는 상대적 빈곤을 선물했던 것이 아닐까요? 종교 지도자들은 얼마나 달랐을까요?(5-8) 그들 역시 이해득실에 민감한 사람들이 되어버려서, 돈을 받고 평강과 전쟁을 파는 한낱 직업인에 불과해졌음을 지적합니다. 우리 시대의 유명 인사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목사라는 호칭보다는 회장이라는 호칭을 듣곤 한다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뱉던 이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분이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자신이 타고 다니는 외제차 때문에 나온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더 내려갈 수 있기를 힘써야 하겠는데 말입니다. 그런 사람을 존경하는 세상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23:10).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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