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270(2013. 1. 24. 목요일).

시편 시 68:11-14.

찬송 23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심코 마주치는 사람들 중에 누추하고 힘겨운 삶이 한 눈에 짐작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는 저절로 연민의 마음이 일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근거 없는 자만이기도 합니다. 삶이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데다, 그런 삶이 갖는 또 다른 측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론 오히려 연민이 아닌 동질감 동화되는 마음으로, 그 삶에 대한 시상과 생각이 깊어지기도 합니다. 배수아의 소설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에 등장하는 여인은, 국도 변에서 사과를 팔고 있습니다. 허름하고 초췌한 차림새로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아직 채 익지도 않은 푸른 사과를 팝니다. 춥기도 한 늦가을, 주인공은 남자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여인을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과를 한 봉지를 삽니다. “나는 여인네의 거칠게 튼 붉은 뺨을 바라보면서 사과를 사 버린다. 바삭거리는 오래 되고 묵은 냄새나는 종이봉투에 여인은 흐린 빛의 손으로 짠 스카프로 얼굴을 반이나 가리고 있다.” 그런 여인에게서 사과를 사면서 주인공은 생각합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천천히 이 거리를 걸어가 보고 싶은 기분도 든다. 그래, 종이봉투에 담긴 푸른 사과를 팔면서, 이 거리에서 살아도 좋겠구나. 밤이 어두워지면 무거워진 발을 질질 끌듯이 하며 낮은 산들 넘어 강가의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뒷모습이 보인다. 스물다섯 늦가을 어느 날에 나는 목이 메었다.” 여인에 대한 동정심이나 연민이 어느 덧 자신도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이 됩니다. 누구도 그런 삶을 일부러 바랄 것 까지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미래란 알 수 없으니까요. 또한 그런 삶이 완전히 불행하거나 무의미한 것만도 아닐 겁니다. 고달픈 삶의 뒷모습에도 누군가를 목이 메게 하는 거룩한 진정성 같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1030일 방송>a.

 

2. 세 가지의 비유를 읽었습니다. 등불의 가치에 대해서(21-25), 가만히 자라는 씨에 대해서(26-29), 겨자씨 한 알에 대해서(30-34)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들이 사용된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시키기 위한 말씀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합니다. 종종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는 설교나 간증을 듣곤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들의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들로, 또 다른 이 세상을 연장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 가 없습니다. 가령 월세살이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5층짜리 내 집 마련을 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또 건강 때문에 늘 힘겹게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근육질 좋은 몸매로 활보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에 비해서 예수님의 천국 소개는 차별화가 분명합니다. 가만히 자라는 씨의 비유는 천국을 소개하는 대표적인 것인데, 천국은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완성되어 가는 곳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농사짓는 농부가 하는 일이란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씨가 열매를 맺기까지 건강하게 자라나게 하는 일이란, 그 농부의 처지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농사짓는 일에서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의 아이들도, 자고 일어나고 하는 일들을 되풀이 하는 동안에, 몸과 성품이 저절로 자라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의지나 계획대로 이룬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를 주님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행하시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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