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314(2013. 3. 9. 토요일).

시편 시 77:1-3.

찬송 47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남자가 시내 대형 서점에서 책을 훔치려다가 현장에서 발각돼, 경찰에 넘겨졌습니다. 전과는 없었지만 추가 범행이 있을까 싶어서 집을 수색해 봤더니, 지난 2년 동안 훔친 책 162권이 나왔습니다. 2,250,000원 어치였지요. 남자는 불구속 입건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속사정을 알게 된 서점 주인이 남자를 용서했고, 책 선물까지 건넸다고 하는데요. 남자의 사정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옛말은,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기특하게 여긴 데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의 책 도둑은 말 그대로 도둑일 뿐이지요. 책을 훔쳐서 읽는 게 아니라, 돈을 받고 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그야말로 옛날식 책 도둑이었습니다. 경찰이 남자의 집을 수색했을 때, 훔친 책들 뿐 아니라 평소에 읽던 책들이 집안 가득히 쌓여 있었는데, 고전문학부터 수필 철학까지 다양했습니다. 알고 보니 남자는 평소에 책읽기를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오랫동안 실직상태에 있게 되면서 2, 3년 전부터 책 살 돈이 궁해졌고, 그 때부터 책을 훔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책을 읽기 위해서 훔쳤던 거지요사건 후에도 그는 여전히 책만 보면 눈이 커지는 것 같고 기분이 좋아진다.” 라고 말했고요. 그러면서 지금까지 가장 감명 깊게 읽을 책으로, 가브리엘 마르케서의[백 년 동안의 고독], 니콜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고 인생 최고의 책으로 조세희의 쓴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꼽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떠오르는 희대의 책 도둑 스티븐 블룸버그가 있습니다. 그는 20여 년 동안 미국 전역 268 도서관에서 희귀본 23,600여권을 훔쳤는데 시가로 약 2천만 달러,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약 200억 원에 달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가 훔친 책을 두고 <블룸버그 컬렉션>이라고 불렀습니다. 도둑이었지만 책에 대한 최고의 안목을 보여주었기 때문인데요. 블룸버그는 특정 주제들을 정해놓고 그 주제와 관련 된 모든 책들을 완벽하게 수집했습니다. 1990년에 동업자의 고발로 경찰에 체포된 후, 정신 감정을 위해 의료시설에 수감됐을 때, 누군가 물었다고 하지요. “참 솜씨도 좋은 녀석이 보석도 아니고 겨우 책 따위를 훔쳤나?” 블롬 버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팔아먹기 위해 책을 훔친 게 결코 아닙니다. 오직 책을 가지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도저히 다스릴 수도 없고 채워지지도 않는 욕망 하나를 갖고 있다고 고백했는데, 그것은 바로 책을 향한 욕망이었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125일 방송>

 

2. 오늘 역시 세례자의 삶에 대해서 계속하고 말씀합니다. 죄가 우리의 왕이 되게 하지 말고우리 몸의 지체로 하나님의 의로운 도구가 되게 하라고 말입니다(12-13). 너무도 정곡을 찌르는 진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왕이 누구인지를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마음속의 생각이나, 몸이 달음질하는 방향성이 죄가 소리치는 곳은 아닌가? 아니면 나의 온 몸의 지체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아름다운 도구들로 일하고 있는가? 그런데 정신을 화들짝 놀라게 하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14) 라는 말씀입니다. 그동안 유대인들은 이 구절을 놓고 죄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방법을 궁리하고 또 궁리했던 것 같습니다. 죄를 미워하려고 했고, 그래서 죄를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으려고 힘썼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죄로부터 멀어진 것이 아니라, 더욱 더 죄의 둘레를 맴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는 같은 유대인이었으면서도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들과 차별화된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는삶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로부터 멀리 멀리 달아나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안의 삶으로 다가서는 것입니다. 내 입술로, 내 손과 발로 주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삶을 궁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엊그제는 한 농아인 교회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귀와 입술이 굳어버린 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많다는 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사소통에 있어서 충분치 못함을 안타깝게 여기셨습니다. 그건 건청인(健廳人)인 우리라고 조금도 더 나을 건 없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도 너무 자주 생각 따로 말 따로 그리고 행동 따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내 입술로, 내 손과 발로, 그리고 내가 가진 내 모든 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고 있는가?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